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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 하반기 불교학 박사논문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2.22 13:11
  • 댓글 0

서울대 명법 스님 外 9명

“물리학이 발견한 세계는 불교였다”

동국대 청아 스님의 「불교와 현대물리학∼」
물리학의 우주관-불교의 세계관 비교

20세기 서구의 과학자들은 불교의 세계관과 물리학의 논리가 단 하나의 충돌도 없이 융해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구 과학의 역사는 기독교와의 충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와 과학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이들에게 불교는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종교였다.

90년대초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가 돌연 출가를 한 것이다. 그 출가자, 자광사 주지 청아스님이 올해 동국대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의 제목은 「불교와 현대물리학의 세계관 비교연구」. 현대과학의 최고정점인 물리학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의 하나인 불교를 비교연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길을 끄는 논문이 아닐 수 없다.

청아 스님은 논문에서 불교와 과학이 만난 세계적인 동향을 소개하는 한편 불교와 물리학의 자연관·세계관·우주관을 비교했다.

청아 스님은 불교와 물리학의 만남이 두 분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를 과학적으로 이해할 때 과학자들이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익은 현대과학에서 아직 연구가 완료되지 않은 자연대상들을 연구할 때 그 연구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으며, 인간의 일상 경험의 차원을 넘어서는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불교의 수행론을 수용하게 된다면 현대과학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물리학을 불교적으로 이해할 때 불교계는 기세간에 대해 과학적이고 현대적인 언어로 정밀하게 보완할 수 있으며, 다른 현대의 학문분야와의 상호접목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러한 물리학과 불교의 만남은 미래 자연관의 지향점을 찾아내는 동시에 서양의 총체적인 위기를 좀더 체계적이고 학문적으로 풀어가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물리학의 자연관에서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물질과 진공의 문제, 부분과 전체, 주관과 객관, 그리고 순환 고리의 문제 등이 불교의 세계관에서 불이의 관점으로 일목요연하게 설명됨으로 불교의 세계관과 물리학의 자연관이 자연스럽게 융화되어 발전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된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다.

탁효정 기자 tkahj@beopbo.com


“송대 찬란한 문화 원천은 禪”

서울대 명법 스님의 「송대 예술관과 선종」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인 송대 문화의 원천이 선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송대 예술관에 끼친 선종의 영향-의경과 시회화일률론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서울대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명법 스님의 논문은 송대 미학에서 시와 회화, 인간의 내면성이 하나로 일치되는 매개체가 선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논문에서 명법 스님은 송대 문(文)의 부활의 흐름 속에서 선종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중국 전통 문학예술의 변화를 의경 개념과 시서화일률론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송대의 주체세력으로 등장한 사대부 계층은 불교를 문(文)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는데 관용적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선종은 불립문자(不立文字)에서 불리문자(不離文字)로 전환되었다.

또한 선종은 중국의 자연관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자연을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육근과 육진에 의해 구성되는 현상이며 마음의 경계로 전환시킴으로써 새로운 미학의 길을 열었다.

선종에 의한 중국미학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예악문화로부터 인간의 내면성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 마음의 표현으로써 시와 회화가 하나가 되었으며, 작품의 중심이 작가의 주관성, 즉 의경이 됨에 따라 감상행위도 의경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송대 예술활동은 실천적인 인격수양의 행위가 되었으며 나아가 도를 추구하는 행위가 되었다. 그 결과 예술활동은 기능이 아닌 문의 활동이며, 송대 사대부들의 정체성 확립과 그들의 사회적 소통의 한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탁효정 기자


“간화-묵조 배경은 현실인식”
동국대 도원 스님의 「남송대 선사상」

동국대 불교학과 도원 스님의 「남송대의 선사상연구」는 남송 시기 대혜와 굉지의 선사상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다. 대혜는 문자선 타파와 묵조선 비판을 통해 획기적인 수행방법론인 ‘간화’를, 굉지는 당대의 ‘무사선’의 올바른 인식과 실천을 위해 ‘본각 돈오’를 핵심으로 하는 달마 선법의 맥을 이어 ‘묵조선’을 주장했다. 두 선사의 시적 후 묵조는 급속히 변화하고 간화는 융성의 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두 선사의 사조는 근본적으로 당대선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토대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정하중 기자


불교복지 침체원인은 미군정
동국대 성관 스님의 「일제하 종교정책」

“일제와 미군정이 실시한 종교정책은 불교 종립학교 설립과 운영에 악영항을 끼쳤다.”

수원포교당 주지 성관 스님은 박사학위논문 「일제와 미군정기의 종교정책이 종립학교에 미친 영향」에 이같이 밝혔다.

논문은 종립학교의 현 주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일제와 미군정 시기에 종립학교가 열세였던 또 다른 이유는 불교 내부의 갈등과 종립학교가 불교 인재뿐만 아니라 포교, 사회전반적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관임을 간과한 탓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최호승 기자


“유식으로 空사상 재해석”
창원대 강영철의 「반야심경 해석」

강영철 씨는 창원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 「후기중관학파 관점에서 본 반야심경 해석」에서 “후기중관학파는 반야심경의 공사상을 유식사상의 7식과 8식을 포함해서 재해석함으로써 공 사상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강 씨는 이어 “관자재보살이 현대에 다시 화현한다면 부파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붓다의 증명하에 『반야심경』을 설하였듯이, 역시 붓다의 증명으로 후기중관학의 입장에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융합한 반야바라밀다를 해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정섭 기자


탑은 깨달음의 상징물
동국대 신용철의 「통일신라석탑」

동국대 미술사학과 신용철 씨의 박사학위논문 「통일신라 석탑 연구」는 통일신라 석탑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이다. 통일신라시대는 한국 역사상 불교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다. 이 시기에 있어서 탑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체가 아니라 깨달음(정각)의 중심체로서 표출하는 상징물이었다.

신 씨는 이 논문에서 통일신라석탑을 4가지 측면으로 접근했다. 먼저 제작의 이유, 석탑 건립의 조영적 특징, 제작방법과 편년 문제, 그리고 통일신라석탑의 특징이다.

통일신라석탑은 불교교학과 조탑술의 발전으로 관념적 이상세계를 건탑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는 탑을 신앙적 대상물에서 예술적으로, 더 나아가 관념적 이상세계의 구체적인 구조물로 표현한 통일신라만의 독창적 창안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이 논문의 요지다.
 
탁효정 기자


콘텐츠 개발이 불교미래
동국대 이재수의 「유비쿼터스~」

동국대 불교학과 이재수 씨의 박사학위논문 「유비쿼터스 시대의 불교문화콘텐츠 연구」는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정보화혁명의 정점인 유비쿼터스를 활용한 불교문화콘텐츠의 개발 인프라 구축에 대해 제언한 논문이다.

이 씨는 유비쿼터스를 ‘시공무애자재’, 화엄의 ‘사사무애법계관’에 비유해 정의 내렸다. 유비쿼터스의 불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 교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온라인 포교활동 및 다양한 디지털콘텐츠 작업을 ‘불교를 소재로 한’ 것에서 벗어나 ‘콘텐츠에 담겨진 인간 내면의 가치 형상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비쿼터스 콘텐츠 개발을 위한 질적 도약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이를 위한 표준 기술 제정, 전문인력양성 인프라 구축, 불교문화의 종합적인 데이터베이스화, 식별체계 확립 등의 선결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정하중 기자


근대불상의 범본 이룬 선각자

동국대 윤범모의 「김복진 연구」

동국대 미술사학과 윤범모 씨의 박사학위논문 「김복진 연구」는 일제시대에 활동한 한국 조각사의 거목 김복진의 작품과 삶을 본격적으로 고찰한 논문이다.

1940년 서른아홉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김복진이 작가로 활동한 기간은 10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는 근대 최초의 조각가로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미술평론가·문예운동가·사회주의 운동가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김복진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현존하는 작품이 거의 없는 데다 제자들의 다수가 월북했고, 또 좌파였던 이력 때문에 분단시대 이후 금기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김복진은 근대 조소예술계의 선구자로 한국조소예술의 토대를 구축한 작가였다. 하지만 동시대 미술가들과 달리 그는 전통적인 불상예술에 일가를 이루어 근대 불상의 범본을 이룩하였으며, 전통과 진보라는 양 극단을 섭렵해 창작의 지평을 넓힌 인물이기도 했다. 동시에 카프의 실질적 지도자로서 사회주의 운동의 최전선에서 빛나는 역할을 수행한 예술가였다는 것이 논문의 요지다.


“19세기 대방은 왕실여인 기도처”

동국대 손신영의 「19세기 불교건축」

동국대 미술사학과 손신영 씨의 박사학위논문 「19세기 불교건축의 연구-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는 정치사회적 혼란기이자 문화의 퇴조기로 인식되고 있는 19세기의 서울·경기지역 불교건축의 변화상을 고찰한 논문이다.

19세기에 들어 서울·경기지역의 불교사찰들은 대체로 대지규모가 협소하고 기존의 사찰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건물이 세워지는데 대방과 판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19세기 전후로 전국적으로 염불의식과 만일염불회가 성행했지만 서울 경기지역은 독특한 지역성으로 인해 염불결사나 염불신앙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손 씨는 이러한 특징이 왕실불교신앙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았다. 왕실여인들의 시주로 조성된 건물들은 궁궐에서 나타나는 건축적 요소들이 가미되었고, 이 건물들은 왕실여인들의 출입기도처로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왕실여인들은 자유로운 출입이 힘들었으므로 서울·경기지방에서 염불결사가 발전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탁효정 기자


“세종, 불교로 생활규범 제시”
동국대 김기종의 「월인천강지곡의 底經」

동국대 국문과 김기종 씨의 박사학위논문 「월인천강지곡의 저경과 문학적 성격 연구」는 월인천강지곡의 저경, 서사구조 분석을 통해 그 성격을 규명한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월인천강지곡은  『대방편불보은경』·『태자수대나경』 등 보은의 중요성과 방법을 강조·제시하는 경전의 비중이 강화돼 있다”며 “이는 ‘보은’과 그 실천덕목인 보시, 효도, 인욕 등이 불자로서 복덕과 공덕을 짓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킬 생활 규범의 성격이므로 이에 대한 실천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은 “월인천강지곡의 서사구조는 법신의 체와 용이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며 하나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유교와 불교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필요한 불이(不二)의 관계임을 반증한다”며 “작자인 세종이 통치자의 입장에서 안정된 국가 운영을 위해 유불 공존을 모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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