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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왕위를 내어준 바라나시국왕

기자명 법보신문

백성-군사 목숨 구하고자 적과의 전쟁 거부
분노는 폭력을 ‘용기’로 속이며 보복 부추겨

“…부당한 행위를 목격할 때 우리는 분노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은 마치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분노가 치솟을 때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노는 없던 용기마저도 불어넣어 줍니다. 마치 분노가 우리를 보호해 주는 것 같은 착각마저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는 것입니다.…”-달라이라마의 『입보리행론』 법문 중에서.

부당한 폭력이나 공격에 대해 분노하며 대항하지 않고 그것을 묵묵히 수용하는 이들을 가리켜 우리는 겁쟁이라고 손가락질하곤 한다. 적의 공격이나 폭력에 대항하지 않는 모습은 무력하거나 비굴하거나 용기가 없어 보인다. 설혹 그 내면에 어떤 이유가 있다하더라도 그 겉모습만큼은 비굴하거나 용기가 없는 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당한 폭력 앞에서 치솟는 분노는 용기를 불러오는 원동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이에 대해 ‘우리를 속이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분노는 마치 우리 자신을 보호해주려는 친구의 모습으로 다가와서는 상대를 공격하고 보복하는 것이 ‘용기’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속인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보복은 상대와 나 모두에게 상처만 남길 뿐임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마치 용기인양 착각하여 보복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수행담인 『본생경』에는 ‘분노’와 ‘용기’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범여왕의 아들로 태어나 바라나시의 국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였다. 이웃 나라의 왕이 바라나시국을 차지하고자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 왔다. 대신들은 입을 모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국왕은 “전쟁을 일으키면 많은 백성과 양국의 군사들이 죽게 된다”며 “어떤 대응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파죽지세로 쳐들어온 이웃나라 왕은 바라나시국을 손쉽게 점령하고 왕궁으로 들어가 아무 저항없이 왕좌에 앉아있던 바라나시 국왕을 생포해 옥에 가두었다. 비록 국왕은 나라와 왕좌를 빼앗겼지만 덕분에 이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옥에 갇힌 국왕은 적국의 왕과 군사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 대해 한없는 자비심을 내었다. 자비로운 국왕을 옥에 가둔 적국의 왕은 결국에 열병에 시달리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바라나시 국왕에게 나라를 돌려주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적국의 침략에 대응하지 않은 바라나시 국왕을 가리켜 혹자는 용기가 없거나 비겁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라나시 국왕은 비록 적군이라 해도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폭력을 거부하며 오히려 그들을 자비의 대상으로 보았다. 분노의 유혹에 속아 폭력을 용기로 착각하는 대신에 모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비심으로 적에 대항한 것이다.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고 비록 적군이라 해도 그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왕위마저 내어주는 결단력이야 말로 바라나시 국왕이 보여준 진정한 용기였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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