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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법과 어느 스님의 죽음

기자명 법보신문

효 림 스님
실천승가회 공동대표

아직도 우리는 반인권법인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나라의 백성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그 법을 절대로 없애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여전히 같이 살아야 한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실인가.

유엔의 사무총장은 노무현 정권의 외무통상장관 출신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현직 장관을 유엔의 사무총장으로 만든 나라다. 그러한 유엔에서 이미 오래전에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반인권법이니 폐지시켜야 한다는 권고를 했었다. 그런데도 우익수구들은 그 법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유일한 보루로 생각하고 결사반대를 하여 지금까지 존속시켜 놓고 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이면 심히 인류사회에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한다.

얼마 전에 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결국 죽고야 만 한 스님이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다. 청주의 어느 사찰에 계셨던 보광 스님이 그분이다. 보광 스님은 일찌기 오징어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조실부모하고 14세부터 어린동생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소년가장으로 어부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 것은 그에게 사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22세 때인 1971년 그가 타고 조업을 하던 오징어잡이 배는 풍랑을 만나 북한으로 떠밀려갔다. 그리고 일 년 후에 귀환을 했다. 그 후 그는 별일 없이 동생들을 돌보며 열심히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의 운명이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결혼도 하고 아들딸도 낳아 그런대로 행복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기구한 운명은 1983년도에 찾아 왔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안기부로 끌려가 모진고문을 받았고, 소위 국가보안법은 그를 고정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감옥살이를 하게 한 것이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는 간첩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간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적대국가에 침투해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빼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국가 정보를 적대국가에 팔아먹는 행위도 간첩에 해당한다. 보광 스님이 젊은 시절 간첩행위를 했다면 후자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간첩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가 중요한 정보를 수집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거나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과 접촉하여 정보를 입수한 사실이 있어야 한다. 그냥 가난한 노동자로 열심히 산 사실밖에 없는 사람이 동네 파출소에 순경이 몇 명 있다고 하는 것이나 자신이 다니는 공장의 약도를 그릴 수 있다는 정도를 가지고 간첩이라고 했다는 것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98년도 출소를 한 그는 곧바로 출가를 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없는 죄를 자백하라고 수사관은 불과 6살의 딸과 4살의 아들까지 취조실에 불러다가 면회를 시켰다. 그때 본 이후로 딸과 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 그는 결국 자신의 누명을 벗지도 못하고 쓸쓸히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다.

물론 그는 우리 조계종의 스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가 어떤 종단의 스님이었다는 것은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가 승려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그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승려로서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사회로부터 우리의 인권을 여전히 잘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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