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단청장 양 용 호
⑥ 단청장 양 용 호
  • 법보신문
  • 승인 2007.03.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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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은 사찰 건축의 화룡점정”

이인호-박준주-이형철 선생
문하서 단청-도금-보존 사사

법주사-홍인지문-경복궁
700여 사찰-문화재 단청불사

무분별 화학안료 사용하는
작금 악순폐단 사라져야

창의적 문양-색조 창출해야
답습 넘은 현대단청 인정

<사진설명>40년 가까이 단청장의 길을 걸어온 월천(月泉) 양용호 씨.

산사의 한 전각을 완성하는 데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품이 든다. 목조 건축의 설계부터 완성까지 총괄 감독하는 건축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도편수, 기둥과 창방, 소로 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어가는 목수, 지붕에 기와를 올려 전각의 형태를 마무리 하는 개와장. 그들 손길에 따라 산사의 기본 품격은 달라진다.

그러나, 그 산사의 전각을 최종 마무리 하는 사람은 도편수나 목수, 개와장이 아닌 바로 단청장이다. 전각에 색을 칠하는 사람, 쉽게 말하면 알몸인 사람에게 옷을 입히는 사람이다. 전각은 단청이 끝나야 완성되는 법. 산사 건축의 화룡점정은 다름 아닌 단청장이다.

최근 서울 종로의 조계사를 찾는 불자들은 새롭게 단장한 대웅전을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 조계가 대웅전을 단청 한 사람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1호 단청장 양용호 씨다.

단순하지만 미묘한 세계

다섯 가지 색, 즉 오방색과 함께 연화문등의 다양한 무늬가 어우러진 조계사 대웅전은 한 눈에 보아 조계사가 새롭게 우리 앞에 다가섰음을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양용호 단청장의 솜씨를 보고 싶다면 굳이 조계사를 찾지 않아도 지척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월정사 대법륜전을 비롯해 법주사, 쌍계사, 제주 법화사, 봉덕사, 개태사 등 전국 유수의 사찰에 그의 손길이 묻어 있다. 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보물 제1호인 흥인지문, 창덕궁 인정전과 선정전, 숙장문은 물론 경복궁 수정전, 동십자각, 광화문 비각, 사육신묘 사당, 탑골공원 팔각정 등 700여 건축에도 그의 단청 솜씨가 배어 있다.

그는 만 20세인 1969년 당시 단청과 불화 그리고 한국화에까지 명성이 높았던 이인호 선생을 만나 단청에 입문했다. 이인호 선생은 조계종 총무원이 주최한 제8회 불교미술 대상을 차지함과 동시에 사단법인 기능인협회 단청분과회장, 한국서화가협회회장, 불교예술단장을 지낸 인물. 이인호 선생과 함께 충남 마곡사 대광보전 단청불사에 참여한 그는 1970년 수원 용주사 대웅전 단청불사를 하며 단청장으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불교집안에서 자란 성장환경이 컸을 것이라 봅니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선생님 지시에 따라 일을 했는데 점차 단청의 화려한 색상과 섬세한 문양에 매료돼 갔습니다. 특히 천상을 나는 비천상에 압도되며 제가 갈 길은 단청이라고 결심했습니다.”

1971년 의정부 화룡사에서 단청불사를 하고 있던 이인호 선생을 다시 찾아간 그는 이인호 선생 문하 입문을 정식으로 간청했다. 이후 그는 스승과 함께 수유동 화계사, 정능 심곡사 정능 약천사, 세검정 옥천암 등의 불사에 참여하며 단청의 기본과 화공으로서의 예와 인격을 체득해 갔다. 그는 이인호 선생에 이어 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이었던 일섭 스님의 제자 박준주 선생 문하로도 들어가 단청, 도금을 전수 받았으며 고 이형철 선생으로부터 불상과 목재 수지처리 및 고색단청 등을 전수 받으며 명실상부한 단청 장인으로 자리매김 했다.

<사진설명>단청을 주제로 한 8폭 병풍.

건축 부재에 선 몇 개 긋고 색만 입히면 될 것만 같은 단청. 그러나 그 단청에는 미묘한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오방색이지만 그 색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느냐가 관건 중 하나인데 여기에는 음양오행 철학이 담겨 있다.

“황토색(노랑)은 오행의 중앙이 되는 토(土 )로써 환희를 뜻합니다. 청색은 목(木)으로써 젊음과 파괴할 수 없는 무한천공을, 여름에 해당하는 적색은 액을 없애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흑색은 지혜와 통찰을 상징합니다.”

오방색 속에는 연화, 국화, 모란, 매화 무늬를 비롯해 십장생과 십이지신상, 용봉, 천마 등의 동물 무늬와 인간의 길복을 기원 하는 길상문 등의 다양한 무늬가 살아 숨쉬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청장은 전각과 주변 환경도 고려해 배색해야 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목조 건물에 많이 사용된 단청을 단순한 도안화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단청은 도안의 답습이나 채색의 모방이 아닙니다. 색채를 규칙성 있게 반복 처리하면서도 문양과 색채를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장식의 색조와 율동, 공간미를 창출해야 합니다. 단청을 모방성 채화로 보기에는 너무나 회화적입니다. 당대의 사회 미의식에 순응하면서도 새로운 미를 창출한 분야 중 하나가 단청입니다.”

사실, 고려시대 단청화공들의 색조 솜씨에만 눈을 돌려 보아도 양용호 단청장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진설명>양용호 단청장은 불사에 쓰인 단청 자료 일체를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후학들이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완숙된 색조 구사법은 단청의 미적 감각을 정점에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외광(外光)을 받는 기둥에는 붉은 색을 칠했는데 이는 힘과 능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추녀나 처마 부분에는 녹청색으로 처리, 그늘진 곳을 밝게 하고 있으며 같은 부재라 해도 빛을 많이 받는 옆면에는 각종 색을 넣어 미려하게 장식했다. 또한 그늘진 밑면에는 명도가 높은 붉은 계열의 색을 써서 공간미와 율동미를 더했다. 위는 푸르고, 밑은 붉게 하는 이러한 원칙은 현대 단청에도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다.

단청 무늬에 쓰이는 동물이나 식물, 길상문 외에도 회화 기법이 투영되고 있다. 좌우 머리초의 중간부와 도채 되지 않은 공백부분이나 연속되는 금문 일부에 그려 넣는 그림인데 이를 일반적으로 별화(別畵)라고 한다.

선조들의 해학도 배워야

별화는 일반 궁궐 건축에는 잘 쓰이지 않았지만 사찰 건축에는 많이 쓰였던 부분이다. 사찰 별화에서는 경전 내용의 일부를 그려 넣거나 도깨비와 같은 해학적인 동물을 살짝 그려 넣었는데 장엄하고도 엄숙한 전각 앞에서 이러한 별화를 발견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선조들의 기재 넘치는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이 이뤄낸 단청 기술은 세계 여느 국가와 비교해 보아도 우수하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며 이러한 전통 양식의 단청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단청은 존재하는데 전통단청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단청 양식의 도안과 색상, 명도 등이 동일화 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 앞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건축물의 시대 양식과 성격에 맞지 않는 단청 양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창조적인 문양 개발을 뒤로한 채 쉽게 쓸 수 있는 문양과 채색도만으로 단청을 해 전체적으로는 동일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창성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기존의 단청문양을 되살리기 어려워 선조들이 애써 남긴 문양을 지워버리고 작업하기 쉬운 문양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폐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독창성 있는 단청은 고사하고 전통 단청 또한 사라질 것입니다.”

실제로 단청을 하기 전에 바탕색 처리는 기본임에도 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부재의 갈라진 틈을 메우기 위해 화학도료 등을 사용함으로써 단청완료 직후 얼마 가지 않아 균열이 생기거나 탈색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현대 단청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양채(화학안료)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1972년 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 안료 성분에 대한 실험을 거쳐 배합 비율을 지정했지만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새롭게 개발된 안료가 많아졌지만 개발된 품목에 대한 연구실험은 없는 상태입니다. 결국 개인 경험을 통한 안료를 조채해 사용하다 보니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몇 종류의 채색들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붓으로 바탕색을 칠하고, 톱밥을 밥풀이나 아교로 이겨 부재의 벌어진 틈새를 메우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는 분무기로채색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문화재 수리 화공 제413호, 도금공 제536호, 단청기술자 제220호의 자격까지도 갖고 있는 양용호 단청장은 이러한 폐단을 끊기 위한 일련의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후학을 배출 하는 도제 양성에 누구보다 매진하고 있다.

후학 양성에도 매진

<사진설명>양용호 단청장은 고건축 단청 복원을 할 경우 부재 일부를 가져온다. 선조들의 체취와 함께 새로운 단청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남들 보고 하지 말라 해봐야 별 소용 없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제자들만이라도 전통적인 단청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현재 그는 경기도 구리 교문동에 ‘월천(月泉) 단청연구소’(031-558-6918)를 두고 10여명의 후학들에게 자신이 40년 가까이 축적한 단청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더욱이 부인 홍춘희(문화재 수리기술자 단청 제330호), 동생 양영송(문화재 수리기능자 화공 제579호), 양용선(문화재 수리기술자 단청 제314호)씨도 단청일에 전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들은 물론 외사촌 동생까지도 그로부터 수학하고 있다.

그는 단청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단청을 하는지부터 자문하며 불사에 임해달라고 당부한다.

“누가 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전통과 현대 단청의 조화는 둘이 아닙니다. 고려, 조선 시대 장인들은 그 시대에 걸맞는 단청을 창조해 냈습니다. 그 전통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 시대에 맞는 단청을 재창출해야 합니다. 단청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화두인 셈입니다.”

사찰 건축의 화룡점정 양용호 단청장. 스스로 든 화두를 풀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사찰 현장을 누비고 있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천장·기둥에 오방색 바탕 문양 새겨
단청이란?

단청이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다섯가지 색을 기본으로 색을 배색해 간색(間色)을 만들어 다양한 색을 표현하며 건물의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건축의 부재에 여러 색깔과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말한다.

현재 단청이라 하면 천장이나 기둥 등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것으로 세분화했지만 포괄적 단청이라 하면 석조건축을 비롯해 공예품, 조형품, 불화, 동굴 등에 채화하는 경우 등 회(繪)와 화(畵)의 개념을 아우른다.

선사시대에 속하는 유물에서도 단청의 흔적을 볼 수 있고 삼국시대에는 고분벽화와 더불어 고분 내의 벽면, 천장 등의 도채된 유구 유례가 있다.

고려조에서는 내용과 도채술이 형식화 되는 경향이 있고 조선조에 들어서는 형식의 다변화와 정립에 무게가 실리며 전승됐다.

한 건물의 각 부재에 따라 단청문양은 서로 다르게 하지만 ‘단청문양’ 자체에는 일정한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음양오행설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단청 종류로는 크게 가칠, 긋기, 모로, 얼금, 금, 고색 단청 등이 있다.

가칠단청은 한 부재면에 단일색으로 칠하는 것을 말하는데 바탕색 칠하기라 보면 된다.

긋기단청은 좁은 줄을 그어 기본 선을 만드는 것으로 먹긋기와 색긋기가 있다.

모로단청은 평방, 창방, 도리, 대들보의 머리초만 그리고 중간에는 긋기만 하여 가칠한 상태로 두는 것을 말한다.

얼금단청은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중간 형태로 금단청문양을 얼기설기 넣는 것을 말한다.

금단청은 금문이나 그림 등을 그리며 다채로우면서도 화려하게 꾸미는 단계다.

고색단청은 복원할 경우 많이 쓰이는 기법으로 새롭게 단청하면서도 기존의 단청색 톤에 맞춰 칠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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