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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멸빈자와 사홍서원

기자명 법보신문

윤청광
방송작가

우리의 불교의식은 삼귀의로 시작해서 사홍서원으로 끝나고 있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부처님께 네 가지 서원을 다짐하며 법회의식을 마친다. 그리고 이 사홍서원은 우리 스스로 부처님께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드리는 맹서이기도 하다. 맹서(盟誓)는 신(神)이나 부처님(佛) 앞에서 반드시 지킬 것을 굳게 약속함을 뜻한다. 그 동안 우리 불자들이 수십 년 동안 부처님 전에서 법회를 마칠 때마다 사홍서원을 공개적으로 크게 다짐했으니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맹서를 부처님께 올렸는지, 일일이 다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수없이 되풀이하여 사홍서원을 하고 “끝없는 중생을 반드시 다 건지겠다”고 맹서를 했으면서도 번번이 부처님께 올린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십 수 년을 끌어온 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종단분규로 빚어진 멸빈자에 대한 용서와 사면이다.
“끝없는 중생을 반드시 다 건지오리다”고 다짐하는 사홍서원의 첫 번째 약속은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을 모두 다 차별 없이 건지겠다는 비장한 맹서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일지라도 사형을 해서는 안 되며 이들에게 조차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모든 중생의 차별 없는 구원을 강조하고 모든 중생들에게 차별 없는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불교계는 정작 같은 도반이었던 멸빈자들에게는 사랑을 나누고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10년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복수의 칼날’을 겨냥하고 있다.

불교종단에서의 ‘멸빈자’는 그 종단의 종헌 종법을 어기고 종단의 질서와 명예를 현저히 손상케 하여 그 종단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된 성직자를 말한다.

불교정화 이후 통합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한 이후 계속된 크고 작은 종권 분규로 멸빈된 성직자는 9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나, 그 가운데서 대부분은 완전히 환속했거나 사망하였고, 13년 전인 1994년 종단개혁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저 부끄러운 폭력사태로 멸빈당했던 9명의 성직자가 아직도 용서받지 못한 채 ‘승적 없는 승려’로 떠돌고 있다.

1994년, 이들 9명의 성직자들은 종권을 장악한 개혁세력에 의해 해종 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종단에서 추방되는 ‘멸빈자’가 되어 장장 13년 동안 ‘승려 아닌 승려’로 전락, 말할 수 없는 불명예와 고통과 멸시를 감수해야 했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 분들이 1994년 종단 사태 때 큰 잘못을 저질렀었다고 하더라도 장장 13년 동안 공식적인 법회자리에 단 한번도 나오지 못한 채 참회와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하는 것은 그 때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응징을 받았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더구나 그 때 멸빈을 당한 9명의 멸빈자들은 대부분 세속 나이 70을 넘은 고령자가 되었으므로, 그 연세로 이제 다시 주지자리나 종단 감투를 넘겨다 볼 리가 없을 것이며 또다시 종권을 넘보거나 파당행위를 획책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참회와 정진을 통해 편안하고 보람 있는 노후를 마무리 하도록 종단이 사면이라는 자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더더구나 다시 종정으로 추대된 법전 종정예하께서도 이 9명의 멸빈자들에게 사면을 내릴 것을 간곡히 당부하셨다니, 매일 아침저녁, 사홍서원을 하면서 “모든 중생을 건지겠다”고 맹서하는 부처님 제자들로서 이들에 대한 사면을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옛 도반이요, 옛 사형이요, 옛 사숙이었던 이들 9명의 전 조계종 성직자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구하지 않는다면, 그 옹졸한 마음, 그 자세를 감히 어찌 모든 중생을 다 건지겠다고 부처님께 거짓 맹서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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