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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 스님과 마곡사

기자명 이학종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마곡사의 소란 중생에 큰 가르침으로 회향되는 것이었으면…

역대 선사들의 언행은 그 일구일행이 참으로 난해하고 심오한 것이어서 함부로 평가하면 낭패를 입기 십상입니다. 당대의 선지식들조차 때론 도반의 언행을 치기로 폄하했다가 망신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범인의 안목으로 감히 선사들의 파주방행(把住放行)을 가늠해보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중국의 저 유명한 마조도일 문하에는 기라성 같은 여러 제자들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보철(寶徹)화상의 운행(運行)은 특히 기민하고 걸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철 화상은 산서성 포주의 마곡산(麻谷山)에 주석하여 보철이라는 이름보다는 마곡(麻谷)으로 더 자주 불리는 선사입니다. 그가 사형사제들과 나눴던 언행들은 경쾌한 외양과는 다르게 곰곰이 생각할 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하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선의 진수요, 선 문학의 백미로 손꼽히는 ‘벽암록’에는 마곡 스님에 대한 일화 두 가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마곡이 법형제인 장경(章敬)화상과 남전(南泉)화상을 차례로 찾아가 앉아있는 선상(禪床) 둘레를 세 바퀴 돌고는 석장(錫丈)을 절그럭 한 번 흔들어 세우고 꼿꼿이 선데서 나온 일화입니다. 이에 대해 장경은 “됐다, 됐어.”라고 말했고, 남전은 “틀렸다, 틀렸어.”라고 말했습니다. 남전은 그 뜻을 묻는 마곡에게 “장경의 대답은 옳지만 네가 한 짓은 틀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유인즉, 선상을 빙빙 돌거나 석장을 절그럭 거리는 따위의 풍력(風力)으로 돌아가는 짓은 결국 파멸로 끝날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설두 화상은 남전의 지적을 잘못이라고 평했는데, 이유는 석장에 걸린 12개의 고리는 12인연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녀온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자성(自性)인 것이니 마곡의 행동을 지수화풍의 4대 중에 풍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할 일이 없다는 뜻이지요.

석장을 흔들어 세운 이야기 이외에 마곡과 관련한 이야기 한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전, 귀종(歸宗), 마곡 세 사람이 일원상(모든 형상을 초월한 무한절대의 본체를 상징)을 맨 먼저 그렸다고 알려진 혜충국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일어난 사건이지요. 남전이 갑자기 땅에다 동그라미를 그려놓고는 “말해보라. 그러면 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귀종이 그 동그라미 속으로 펄쩍 주저앉았고, 마곡은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전이 “너희가 그렇다면 가지 않겠다”며 도중에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일원상을 표현하는 방법만 달랐을 뿐, 세 선사들 모두 언제 어디서나 일원상이 아닌 것이 없음을 멋지게 맞추었으니 굳이 혜충국사에게 갈 이유가 없어졌다는 의미이겠지요.

마곡 화상의 삶은 이처럼 기민하고, 무애자재하며, 때론 수선스럽게 보이면서도 깊은 경계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충청남도 공주군에 있는 마곡사(麻谷寺)가 몹시 분주하고 시끄럽습니다. 그 분주함을 이리저리 평가하기에 앞서, 그 소란이 제발 마곡 화상과 같이 수행자들의 기민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를, 그리하여 그를 지켜보는 세상에게 마침내 큰 가르침으로 회향되는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편집부장 이학종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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