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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수행 정향자 씨 상

기자명 법보신문

만학의 길에 학위논문 주제로 사경 선택
하루에 3시간 자면서 연구하고 수행실수

어느 여름날, 녹음이 짙게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간 곳은 전남 보성군 대원사였다. 집안에 크게 어려운 일이 생겨 주지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처음으로 찾아간 대원사에서 현장 스님을 만났다.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은 주지 스님은 집안 사정 이야기를 다 들으시더니 서예를 하는 내게 수행으로 사경(寫經)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마음이 어지러웠던 그때, 내 마음은 사경보다는 염불이나 절을 하면서 그동안의 내 삶을 참회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 스님의 권유를 조심스럽게 뒤로 미뤘었다. 10년 전 그땐 사경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해서(楷書)로 쓰는 사경이 힘들고 따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나의 꿈은 서예가였고 서예의 꽃이라고 불리는 행초서(行草書)를 멋지게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예술작품에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이 바쁘다는 핑계 같지 않은 초라한 핑계로 스님의 권유를 뒤로 밀어낸 후로 스님을 만날 때마다 사경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 죄송스러웠고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는 사경에 대한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사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당시 만학의 길을 걷고 있던 나는 석사학위 논문 주제로 ‘사경’을 선택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경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다시 현장 스님을 찾아 갔을 때 스님은 사경과 관련해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실로 놀랄 정도의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사경의 기원은 물론 유물사경, 혈사경, 방산석경, 금사경의 재료, 사경의 수행법과 정신성 등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스님은 이미 20년 전부터 사경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일본에서 사경체본을 가져왔었다. 그리고 송광사에서 정진할 때도 사경법회를 열었었고, 대원사에서 사경법문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대원사에서 법문을 들은 불자들 가운데는 법화경사경, 혈사경을 한 분들도 있었다.

사경 논문을 쓰면서 한국사경연구회 김경호 회장님을 만나 보다 정확한 조언을 듣고 자료를 소개받았다. 국회도서관에서 며칠씩 자료를 찾기도 했고, 책을 보고 박물관과 사찰을 찾아다니면서 여러 스님들에게 조언을 듣기도 했다. ‘사경’을 연구하면서 오묘한 진리와 숭고한 정신력, 예술의 섬세함 등을 느꼈다.

사경을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늘 기쁨이 충만했으며 언제나 즐거움이 가득했다.

논문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하루에 2~3시간 이상 잠을 자 본적이 없었다. 침실에 들어가서 잠을 자면 깊은 잠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잠시 소파에서 눈을 붙이곤 했다.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고 책을 읽을수록 재미와 흥미, 신비로움이 더해만 갔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공부였기 때문인지 항상 환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일생 중 사경에 대한 논문을 쓸 때처럼 치열하게 공부하기는 처음이었다.

그 결과, 2007년 2월 호남대에서 ‘수행법으로서의 사경(寫經)과 그 서법(書法)에 나타난 정신성’이란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게 됐다.

서예가 (61·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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