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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기자의 반론’을 반론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4.11 11:06
  • 댓글 0

지난 주 중국에 취재를 다녀오는 동안 기자수첩 ‘기자양반 공부 좀 더 하소’에 대한 연합뉴스 김태식 기자(이하 김 기자)의 반론문이 본지에 배달되었다. 이것이 신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학술논쟁의 소재는 아니라고 판단되지만, 김태식 기자가 반론문을 통해 해명을 요청한 부분이 있기에 부득이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무구정광다라니나 보협인다라니를 도교적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대해서다. 3월 24일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김 기자는 “무구정경이라는 불교의 탈을 쓴 도교신학이 신라사상계에 깊숙이 파급되었다”며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에 불교가 제대로 존립했던 시기는 6, 7, 8세기 밖에 없다. 고려시대 이후 불교가 솔직히 불교인가. 통일신라 이전까지는 몰라도 고려 이후에는 껍데기만 불교지 내용은 다 도교로 채워져 있다.”

기자칼럼에서 필자가 석가탑 중수기와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을 비판하면서 김 기자의 발표내용 일부를 문제시 삼은 이유는 바로 그의 ‘껍데기 불교론’ 때문이었다. 

외래문화는 토착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문화로 정착된다. 이런 측면에서 당나라 때 유행한 도교가 무구정경의 성립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김 기자의 주장은 일면 설득력 있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불교의 탈을 쓴 도교신학’이라는 단정적 주장으로 이어진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탑을 건립하는데 동참하면서 자신의 복락을 비는 것은 지극히 원초적인 신앙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교에서 이러한 신앙을 부정하지 않고 불교의 일부분으로 인정해온 것은 ‘기복’이라는 기층신앙의 형태를 통해 보다 높은 형태의 신앙에 접근할 수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에서 부적이나 주문이 유행할 즈음 인도 북부에서 발생한 초기 대승불교에서는 다라니라는 주술적인 신앙형태가 등장한다. 이는 힌두교의 만트라에서 유래된 것으로 북방불교에서는 vidyā라는 이름으로, 남방불교에서는 paritta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었다. 북방불교에서 vidyā라 불리던 명주(名呪)는 반야계통의 경전이 성립될 당시 dhāranī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면서 '정신집중의 마음상태, 또는 그러한 마음상태에서 법을 기억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반야계통의 경전이 성립될 당시 다라니는 법을 기억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주문으로 일컬어졌다가 나중에는 모든 세간의 재난으로부터 보호받게 하는 기능을 가진 주술적인 주문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무구정경과 같은 다라니는 도교신학보다 오히려 인도 힌두교의 만트라의 염법이 불교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밀교의 등장배경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

더구나 무구정경과 같은 다라니에서 도교(방선도)의 영향이 발견된다는 이유로 ‘고려시대 불교는 불교가 아니다’라는 그의 주장은 견강부회(牽强附會)에 해당된다.

만약 고려시대 이후 불교가 껍데기에 불과하다면, 의천이나 균여·지눌·나옹·태고·기화·휴정·유정·초의·경허 등 기라성 같은 고승이나 고려대장경·고려불화와 같은 찬란한 문화유산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하나, 김 기자는 석불사가 북쪽에 불국사가 남쪽에 있는 것을 각각 주(朱)와 현(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석굴암이 하필 굴로써 조성된 까닭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서다.

석불사와 불국사의 위치를 음양오행설로 해석한 김 기자의 학설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해석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할 만하다. 그렇더라도 이것을 여성의 자궁으로까지 비약할 수 있는 근거는 매우 미약하다.

물론 고대 인도인들이 석굴을 생명의 근원인 자궁에 비유하기도 했고, 최근 신화학이나 인류학에서 굴이나 우물 같은 움푹 들어간 곳이 여성의 자궁 신앙과 밀접하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석굴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석굴문화는 인도 데칸고원 서부지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돈황, 운강 석굴로 이어진 간다라미술이었다. 인도에서도 유독 데칸고원 서부지역에만 석굴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데칸고원 서부지역이 고온다습한 기후인 데서 기인한다. 이 지역의 수행자들이 수행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위해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신 것이다. 더구나 인도에서 석굴에 불상을 조성한 배경이 자궁신앙과 연관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며, 중국에서도 음양오행설에 따라 석굴에 불상을 조성한 경우는 아직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다수 불교미술사학자들이 동의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음양오행의 남북 개념을 적용해 석굴암이 북쪽에 석굴 형태로 위치해 있으므로 자궁으로 설명하는 것은 중간 과정이 크게 생략된 논리의 비약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김대성을 사생아로 표현한 것이나, 박상국 위원에 대해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생략한다.

김 기자는 필자의 지적이 막가파식 매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 불교계 기자로서 불교의 모든 콘텐츠가 사실상 도교의 변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기자수첩의 주제가 석가탑 중수기를 둘러싼 일련의 행태를 비판하는 차원에서 전개되다 보니 김태식 기자의 발표 또한 ‘기자의 검증되지 않은 발표’로 소개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문제 삼은 부분은 기자라는 신분이 아니라 도교의 관점으로 불교를 해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였음을 분명히 한다.

아울러 필자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학술 분야에 여러 공적이 있는 기자라고 해서, 그리고 도교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논문을 다수 발표한 전문가라고 해서, 그가 도교적 시각으로 불교의 여러 콘텐츠를 확대해석하고 있는 부분까지 모두가 동조하고 기립박수를 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불교는 도교와 달리 수천년간 정통교단에 의해 전승되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신도들과 수행자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종교집단인 동시에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수천여개의 학회가 결성될 정도로 수많은 연구자들이 밀집된 학문 영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들이 신앙하고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서 최소한의 지식만이라도 갖고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라 판단된다.

아울러 학술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기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김 기자가 자신과 다른 관점의 주장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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