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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부흥 구심점은 선학원”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4.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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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진 스님 ‘안거방함록과 선종부흥’서 주장

“중앙선원의 안거방함록은 선종부흥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1935년 열린 선학원의 제3차 수좌대회는 한국불교가 지닌 독자성을 천명하는 침체된 선종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부흥의 기틀을 삼고자했던 구체적인 운동이었다. 안거방함록에 실린 청규와 300여명의 수좌들은 선종의 중흥을 드러내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4월 7일 정법사에서 열린 한국선리연구원 제1차 월례발표회에서 ‘선학원 중앙선원 안거방함록과 선종부흥을 발표한 한국불교선리연구원장 법진〈사진〉 스님은 “근대 선종부흥’의 구심점이 바로 선학원이었다”고 주장했다.

법진 스님은 1997년 선학원에서 발견된 두 권의 방함록에 실린 내용을 소개했다.

두 방함록 중 한 권은 1934년 동안거부터 1942년 동안거까지 15회를, 또 한 권은 1942년부터 1967년까지 26회의 안거와 참여자를 수록하고 있어 근현대시기 한국불교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1935년 3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개최된 제3차 수좌대회에는 전국 37개 사찰에서 비구승 69명, 비구니 6명 등 총 75명이 참석했으며, 그밖에 많은 사부대중이 운집했다. 그 중에는 만공·성월·도봉 스님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도 다수 기재돼 있다.

당시 발표된 8개조의 청규는 대처육식과 주지전횡 등 왜색불교에 대한 경계가 포함돼 있다. 또한 여기에는 대처승이 중심이 된 당시 불교계에서 ‘갈 곳 없는 비구’들의 열악한 수행환경이 드러나 있다.

법진 스님은 “당시 선학원의 선원이 중앙선원으로 불리워진 것은 지역적으로 서울에 위치해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비구승들의 정신적·물질적 토대가 선학원이었던 것이 더 큰 이유”라며 “이러한 물적 토대는 부인선원의 재가여성 불자들이 담당했다”고 밝혔다.

부인선원이란 1935년 3차 수좌대회를 전후해 당시 선학원 스님들이 재가여성 불자의 수행을 장려하기 위해 설치한 재가선원이었다.

여기에는 다수의 왕실여인들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들의 경제적 지원은 당시 비구 스님들의 수행환경 조성에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것이 법진 스님의 설명이다.

법진 스님은 “선학원 중앙선원에서 실시된 안거의 내용을 담고 있는 방함록은 조선 선종이 지닌 정통성과 독자성을 확립한 흔적이었으며, 왜색불교의 경향을 경계하고 이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 불교계의 동향과 선종의 정체성 확립, 선원의 운영과 수좌들의 수행지침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탁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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