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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북, 억불 피해지역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4.23 14:31
  • 댓글 0

국학원, 『경북 정신문화』서 불교사 조명
‘사찰수·승려수 전국에서 최대’ 드러나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시대였으며, 당연히 유학이 가장 융성했던 경북 지역의 불교 또한 상당히 축소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막연한 추측이 사실이 아니며 조선시대 경북지역의 불교교세가 전국 어느 지역보다 우세했다는 사실이 최근 국학원의 연구에서 드러났다.

한국국학진흥원이 4월 발간한 『경북학의 정립과 정신문화사』〈사진〉는 경북지역의 불교와 유학, 동학과 새마을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북지역의 불교사상과 화랑정신’이라는 주제로 구성된 불교편에는 조선시대 경북 지역의 사찰동태와 함께 전국의 불교현황이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경순 한국철도대 강사의 「조선시대 경북지역의 불교」와 한동민 중앙대 교수의 「근대 경북불교의 변화와 동향」이다.

신라의 수도가 위치한 지역으로서, 또 일연 스님의 가지산문이 융성했던 이 지역에 고려시대까지 불교문화가 융성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조명돼왔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넘어서면 경북 지역은 유학의 도시 내지 퇴계, 서애, 학봉 등의 기라성같은 유학자들이 배출된 지역으로서만 연구돼왔으며, 불교에 대한 연구는 석박사 논문이 단 한편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경시돼왔다.

이러한 연구의 부재가 경북 지역의 불교가 조선시대에는 상당히 피폐해졌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연구물들은 조선시대 경북의 불교가 축소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경순 씨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후기에 종합 편성된 여지도서에 드러난 현존 사찰 수가 1537개인데, 도별로는 경상도가 331개로 가장 다수를 차지하며, 이 중 경북 지역의 사찰은 196개이다. 1915년말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실린 전체 사찰 수는 1401개이며 그 중 경상도가 403개로 경상도에 사찰이 가장 밀집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북의 사찰수는 16세기에서 18세기 중반을 거쳐 20세기의 기록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조선전기에서 조선말기까지 사찰수가 전혀 감소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지역은 경상도가 유일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사찰(寺)의 수는 감소하는 반편 암자(庵)의 수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순 씨는 이에 대해 “경상도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사찰 수가 계속 증가한 지역이었지만 사찰의 경우는 감소하고 암자는 큰 증가를 보이는 것은 조선시대 전반을 거치면서 산중불교화가 진행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순 씨는 “시주자 집안의 선영의 위패를 보관하기 위해 사대부들에 의한 불우의 중창이 꾸준히 이루어졌고, 또 사찰이 향촌기관에 소속돼 일정한 사역을 부담함으로서 향촌 내에서 존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의 불교세가 실질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일제 치하에서부터였다. 1912년 당시 전국의 사찰수는 1283개, 승려의 수는 7900명으로 집계됐다. 그 중 경상북도는 사찰수가 177개, 승려수가 1410명이다. 경남과 합하면 승려의 수가 1065명으로 전체 승려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경상도 지역의 불교세가 타지역에 비해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찰과 승려수는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나타낸다. 1926년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경북의 사찰 수는 165개, 승려는 847명으로 14년새 사찰은 12개 승려는 563명이나 줄어들었다.

1930년대에 이르면 일본불교의 사찰이나 포교자가 조선불교의 교세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한 반면 조선사찰의 교세는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936년 경북에 설립된 일본불교 포교소는 33개, 사원은 9개에 불과하지만 신도수는 2만1358명에 달한다. 이에 비해 조선불교계가 운영하는 포교소는 27개, 사찰수는 145개였지만 신도수는 고작 1.5배 정도에 불과한 3만6601명이다.

한동민 교수는 “사찰령으로 조선불교가 발전했다는 일제의 선전과 달리 조선 불교계는 생활난 등의 이유로 승려의 환속이 많아졌으며 사찰 또한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선불교계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림사·은해사 등 5개 본산 주지들의 연합 기구인 경북불교협회를 결성하고 오산불교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잡지 경북불교 발간, 애국기 경북호 헌납, 수해의연금 모집 등의 활동을 펼쳤다.

경북불교협회의 활동은 이들의 연합적 형태는 불교의 발전과 효과적인 내용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동시에 애국기 경북호 헌납금을 5본산별로 책정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집단적인 친일행위를 위한 기제로 변모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됐다.

이러한 경북불교의 교세는 해방 이후 문경 봉암사의 결사운동, 직지사 관응 스님의 선풍 진작 등으로 이어지면서 현재로 이어져왔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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