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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별 거 있어? 별 거 있어!

기자명 법보신문

『시핑뉴스』
애니 프루 지음 / media2.0

지지리도 못난 사내 쿼일을 따라다닌 수식어는 “뚱땡이, 코찔찔이, 못난 돼지새끼, 흑멧돼지, 바보 멍청이, 악취폭탄, 방귀뚱보, 기름덩어리”였습니다. 그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일찌감치 실망을 안겨 주어 노골적으로 구박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대도시 뉴욕의 음습하고 구석진 곳. 고향을 등지고 몰려든 사람들의 삶이 더러운 콘크리트 바닥에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부평초처럼 떠도는 곳. 그곳의 비좁은 트레일러 안에서 막연히 ‘누가 알아? 내 앞날에 무슨 일이 닥칠지….’라며 혼자서 외쳐대던 쿼일.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다른 똘똘한 사내들보다 비계만 더 많을 뿐인 쿼일.

애욕으로 똘똘 뭉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지만 그녀는 떠나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사고로 죽고 맙니다. 아내가 자신에게 준 것이라고는 엉겁결에 낳아버린 어린 두 딸과 저주와 경멸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상처(喪妻)의 아픔을 달랠 길 없던 그는 그나마 적을 두었던 삼류신문사에서도 정리해고 당합니다. 결국 나이 많은 고모의 손에 이끌려 새로운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조상들의 땅, 뉴펀들랜드.

그곳은 척박한 땅과 예측할 수 없는 기후, 그리고 원시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바닷가였습니다. 쿼일 집안은 오래 전에 먼 곳에서부터 집을 밧줄로 끌고 와 무단으로 그 지역에 터를 잡고 들어앉았습니다. 그의 조상은 악명 높은 해적이었던 데다가 집안의 내력도 매우 복잡하고 잔인하고 문란한 성품들을 자랑하였기 때문에 그곳의 토박이 주민들은 쿼일 가(家)의 귀향을 담담하지만 조심스런 눈길로 환영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전혀 상관없는 쿼일과 늙은 고모는 수십 년 전에 가족들이 버리고 떠난 옛집을 다시 수리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기로 합니다.

“새 인생, 새롭게 출발하자!”라며 한국 사람들이 툭 하면 주먹 쥐고 외치는 ‘화이팅!’이 아니라 그곳이 아니면 의지할 곳도 없었고 주머니는 비었고 딸아이들도 커가니 어떻게 해서든 비비고 살아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 했던 가요? 비유가 적절치 못합니다만 이전 직업을 되살려 지역 신문 기자가 되어서 아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지면을 채우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
하지만 이제 쿼일은 진짜로 제 인생을 살아갑니다.

어느 날 매섭게 몰아닥친 폭풍우에 조상 때부터 바위 위에 단단하게 묶여 있던 집이 홀라당 날아가 버립니다. 쿼일 가문에 진작부터 내려진 온갖 저주와 불행한 예언도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어둑한 운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여봐란 듯 살기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자기연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변두리 인생이 아니라 질기고도 끈덕지게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뿌리박혀 있는 곳에서 천천히 세상을 향해 진솔한 걸음을 걸어갑니다.

‘인생, 뭐 별 거 있냐?’고 자조하면서도 막연히 자신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쿼일을 만난다면 분명 생각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인생, 거 참 살만 한 것이네!”라고 말입니다.
 
동국대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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