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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사월의 향훈

기자명 법보신문

이른 아침 좌선을 마치고 앞마당에 나섰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이 먹구름 속에 갇혀있고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장대비가 바다를 건너온다.

삶 또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막다른 골목. 그러나 ‘나’가 무너지고 나면 너그럽지 못했던 마음에 단비가 내리 듯 자비심이 감돌기 시작한다.

사월은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나와 부처님의 성품이 둘이 아니라는 믿음, 사람으로 태어난 의미가 수행하는데 있다는 깨우침이다. 부처님 법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서 나타나는 것은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가 생기며 법을 깨우쳐가는 즐거움이다.

부처님이나 조사의 가르침이 둘이 아니라서 그 거울에 비추기만 하면 자기의 허물이 드러나서 티끌이 붙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깜량의 불법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비추다보니 아상은 점점 높아서 자기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을 원망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바람을 따라서 꽃잎이 끝없이 떠나야 비로소 열매가 맺히듯이 자기를 떠나야 한다.

자기가 없어져서 스스로도 편하고 남들이 봐도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수행상이 붙어 있는 사람들은 옆에서 봐도 밤낮으로 열심히 수행은 하는데 날카롭고 한마디 말에도 자비심이 부족하고 여유가 없다. 많이 아는 것은 좋은 것이나 참으로 귀한 것은 아는 것이 남아있지 않는 사람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아는 것은 없어지고 오직 모르는 것 하나만 남게 된다. 일체 마음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 그 삼매의 즐거움은 세상의 어떠한 맛과도 비교할 수가 없어서 일체 상이 녹아 떨어져 버린다. 모르는 것 하나를 바로 획득해야 비로소 공부 길로 들어서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화두이다.
 
화두를 바르게 들면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것이 그물코를 풀듯이 풀리고 날뛰는 어리석음이 사라진다. 그러므로 자기를 속이지 않는 진실한 사람만이 부처님 마음과 둘이 아닌 화두를 잘할 수 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조금도 구애 받지 않고 활발발한 가운데 화두를 들고 가다보면 그 공덕으로 나타나는 삼매의 즐거움이 깊은 잠속으로 이어져서 마침내 깊은 무명인 잠까지도 녹여 버린다. 화두는 용광로와 같아서 아는 것을 다 태워 버리기 때문에 오직 끝까지 모르는 것을 가지고 가야만 한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에 속아서 간화선을 평생을 해도 진전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무시하고 시대에 맞는 화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 선사들을 비방해서는 안 된다.

간절히 정성을 다하다 보면 갈수록 쉬어지고 가벼워서 문득 시절인연을 만나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보조국사 스님께서 ‘다만 알지 못할 줄을 아는 것이 성품을 보는 것(但知不會是卽見性)’이라고 강조하셨던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하리라.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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