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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불교 견문기 ② 자제공덕회

  • 교학
  • 입력 2007.05.01 13:34
  • 수정 2011.04.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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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세계 만들어가는 500만 관음보살의 화신

1966년 증엄 법사 설립-전 세계 회원 500만명 활동
빈민의료시설이 모태-보시금으로 광고없는 TV운영

<사진설명>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불교자제종합병원에는 자제공덕회 회원 수백 명이 병원 곳곳에서 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가 없기를
천하에 내가 믿지 않는 이가 없기를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않는 이가 없기를
온갖 번뇌와 원망과 근심 다 버리어
만인을 사랑하는 마음 허공에 가득하기를  - 증엄 법사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만사찰견학단(단장 토진)이 불광산사에서 발길을 돌려 다다른 곳은 화롄(花連) 외곽 너른 들판에 자리 잡은 정사정사(靜思精舍)였다. 깔끔한 단층 법당과 몇 동의 고즈넉한 현대식 건물들 주변으로는 잘 경작된 밭들이 사원을 받들 듯 감싸고 있었다. 경내를 오고가는 이들 또한 여느 사찰과 별반 다름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밭에서 일을 하거나 수레에 뭔가를 싣고 오가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그 옛날 백장회해 선사의 가풍이 철저히 지켜지고 있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 500만 명 자제공덕회 회원들이 이곳 정사정사를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새삼스런 자각은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조차 허투루 보지 않도록 했다. 특히 수십 년 째 이어지고 있는 자그만 양초공장과 폐품 수거시설에서는 가난한 이를 구제하고 부유한 이를 교화한다는 ‘제빈교부(濟貧敎富)’의 정신이 그대로 와 닿았다.

 

대만 내에서도 최고의 의료시설로 손꼽히는 화롄 불교병원을 비롯한 6개의 병원, 대만 내의 가장 유력한 방송국인 ‘대애(大愛)’, 14만 명의 자제위원과 500만 명의 회원을 갖춘 봉사단과 대학. 쓰나미가 남아시아를 강타했을 때 가장 먼저 의약품과 쌀자루 짊어지고 달려가고, 특히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해 구호활동을 펼쳤던 봉사단. 대만의 긍지라고도 일컬어지는 범세계적인 자제공덕회의 출발은 41년 전 이곳 정사정사의 한 젊은 비구니 스님에 의해 시작됐다.

 

9·11테러 때 가장 먼저 구호

<사진설명>병원 법당인 타이페이 정사당.

대만 최고의 고승 중 한분으로 일컬어지는 증엄(證嚴·70) 법사.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62년 초였다. 도시에서 극장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처음 이곳에 왔다. 홀로 남은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로 머리도 깍지 못한 채 그는 이곳에 머물며 하루 한 끼 식사와 2시간 수면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경전 독송과 참선에 매달렸다. 그렇게 1년, 딸의 굳은 결심에 어머니는 결국 출가를 허락했고 증엄 스님은 대만불교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인순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고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몇 해 뒤인 1966년, 그의 금강석 같은 결심을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만삭의 한 원주민 여인이 난산으로 사경을 헤매던 중 병원에 실려 왔지만 보증금 몇 천원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순간 스님은 수행이란 홀로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대중 속에서 함께 하는 삶이야말로 참다운 대승의 수행법임을 눈물 속에서 자각했다.

 

이후 스님은 30명의 주부들과 함께 자제공덕회를 만들어 대나무 저금통에 매일 5원씩 보시하는 운동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모여진 돈은 전액 빈민구제를 위해 사용했다. 자제공덕회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동참자가 급증했고 1972년에는 빈민의료검진 시설을 세웠던 것이 오늘날 거대한 불교자제종합병원의 모태가 됐다.

 

자제공덕회의 활동은 빈민에 대한 의료지원사업에서 그치지 않고 자선, 교육, 문화, 국제구호, 골수기증, 환경보전, 지역사회개발 등으로 확대시켜나가, 현재 자제공덕회의 활동에 언제라도 참여할 수 있는 이가 14만 명에 이르고 있다. 정사정사의 벽면에 붙은 ‘등불 하나가 천년의 어둠을 다 걷어버리고, 한 지혜가 만년의 어리석음의 능히 타파한다(一燈能除千年暗 一智能滅萬年愚)’라는 구절처럼 증엄 스님의 원력에 의해 시작된 자비희사의 등불이 사바세계를 연화세계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사진설명>자제인들의 마음의 고향 정사정사.

다음날 아침 일행이 향한 곳은 자제병원이었다. 병원을 찾은 일행을 놀라게 한 것은 병원의 규모였다. 지난 1986년 개원한 종합병원과 최근 개원한 응급의료병동은 웬만한 한국의 대학병원 규모를 훨씬 능가했고 법당은 물론 죽은 이를 위한 왕생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더욱 감탄을 자아내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병원에서 자제공덕회 회원 수백 명이 환한 얼굴로 접수대, 응급실, 중환자실, 병실, 안내, 세탁실, 식당 등 곳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일행의 안내를 맡은 봉사자는 “사람이 없으면 수행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서로 도우며 그 속에서 배우는 것이 참다운 수행”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옆에는 족히 50미터는 됨직한 웅장한 정사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육, 법회, 문화공연 등이 이뤄지는 대법당과 자제공덕회의 활동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홍보관도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북한 주민들이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부처님이 지구를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는 초대형 걸개자수였다.

 

1999년 겨울 북한에서의 구호활동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이 보낸 것이었다. 국가와 이념을 넘어선 자제인들의 불교정신, 그 걸개자수는 숭고한 이들의 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1999년엔 북한 주민 돕기

 

<사진설명>고없이 불자들의 보시금으로 운영되는 대애 방송국.

대만 전역에 불교의 이념을 전하고 있는 대애방송국을 찾은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방송국은 지상 14층, 지하 3층의 규모로 이곳에서 TV, 라디오 방송을 위한 모든 업무가 이뤄지고 있었다. 1985년 설립된 세계최초의 불교방송국이기도 한 이곳에는 공개 스튜디오와 대형 행사가 가능한 홀, 가상 스튜디오 등이 완비되어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시설보다도 방송의 내용이다. 여느 TV와는 달리 법문과 봉사활동, KBS의 ‘인간극장’과 유사한 휴먼드라마로 이뤄져 있으며, 상업성 광고가 전혀 없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비록 기업의 협찬 광고가 있기는 하지만 회사 상품을 알리는 것은 아니고 환경 등 공익성 광고에 협찬자로서 소개하는 정도다. 그것도 기업의 이미지가 나쁘거나 환경운동에 역행하는 기업은 협찬자로서 참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말 그대로 철저히 ‘불교방송국’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국이나 병원의 운영기금은 놀랍게도 대부분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투명한 재정운영과 함께 단 돈 1000원이라도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주는 철저함은 자제공덕회에 대한 대중들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특히 방송국의 경우 대애지우(大愛之友)라는 전 세계 400만 명의 후원자가 돕고 있으며, 대만 내 5만 명의 후원자들이 매일 폐품을 모은 돈으로 방송국에 보시하는 돈도 연간 50억이 넘는다고 한다.

 

갈수록 자본화되는 세상 속에서 보시와 동체대비의 정신으로 고통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일궈가고 있는 500만 자제공덕회 회원들. 그들의 자비행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들의 모습을 떠올리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대만=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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