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에 모종을 심지 않으면

기자명 법보신문

윤 청 광
방송작가

교외에서 도심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꽃가게들이 늘어서 있고, 그 꽃가게마다 요즘 온갖 모종들을 내놓고 팔고 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온 때문에 저 여린 모종들을 옮겨 심으면 더러 감기 몸살을 앓기도 하겠지만, 주인 식구들이 알뜰살뜰 정성스러운 손길로 잘 보살펴주고 가꾸어주면, 5월 중순부터는 제법 싱싱한 줄기와 잎을 자랑하다가 머지않아 앙증맞은 꽃을 피우고, 그 끝에 자랑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게 될 것이니 꽃가게 앞을 지나며 각종 모종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문득, 우리 불교집안에서는 어찌해서 저 모종들을 심고 가꾸고 보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법보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열 곳 가운데 겨우 한곳에서만 ‘어린이 법회’를 열고 있을 뿐, 대다수 아홉 곳의 사찰이나 암자에서는 ‘어린이 법회’를 아예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 법회’,‘청소년 법회’는 바로 저 여리고 예쁜 고추모종, 상치모종, 오이, 가지, 토마토 모종을 심고 가꾸고, 보살피는 일인데, 모종을 심지도 않고 가꾸지도 않는다면 장차 불교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봄에 어리고 여린 고추모종을 심지 않으면 한여름에 싱싱하고 풋풋한 저 풋고추의 맛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채소나 과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도 갓난아이가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가 청소년을 거쳐 청년이 되었다가 어른이 되어 나중에는 노인이 되지 않는가?

우리의 스님들은 곧잘 우리들에게 기회만 있으면 인과응보를 말씀하시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설법하시며 좋은 인연의 씨앗을 심어야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많은 스님들 열 분 가운데 겨우 한분만 씨앗을 뿌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스님들은 씨앗도 뿌리지 않고 모종도 심지 않는다면, 훗날 누구를 상대로 설법하실 생각일까?

우리 중생들에게 불교가 왜 필요하고 사찰이나 암자가 왜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스님이 무엇 때문에 있어야 하는지, 그 존재 이유를 되돌아본다면, 어린이 법회, 청소년 법회가 얼마나 중요하고 왜 있어야 하는지, 그 대답은 자명해질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불교 성직자의 목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니, 먼저는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고 그 다음에는 속세의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있다. 만일 ‘상구보리’만 있고 ‘하화중생’이 없었다면 불교는 아마도 괴상한 ‘자기만족 집단’으로 머물다가 몇 십 년도 못 되어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하화중생’이라는 거룩한 또 하나의 목표와 사명이 있었기에 불교는 260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수십억 인구의 바른 인생길을 열어주는 최상의 종교로 그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하화중생’. 고해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고통 속의 중생들을 건져내는 일이야말로 불교의 존재이유요, 스님들의 존재이유요, 사찰과 암자의 존재 이유가 아닌가.

아직 철부지 아이들이요, 시끄럽고 귀찮고 시주금도 못내는 어린 아이들이라고해서 이들을 위한 법회도 열어주지 않고 가르침도 펴지 않고 방치해버린다면, 이거야말로 미래의 불교를 위해 포교를 포기해버린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아직 어리고 여린 꽃이나 채소의 모종은 지금 당장에는 꽃도 없고, 열매도 없고, 별 소득도 없어 심고, 가꾸고 보살피기가 귀찮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모종들이 자라서 결국에는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어준다는 철칙을 왜 모른단 말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은 사찰마다 암자마다 일요일이면 반드시 어린이법회, 청소년법회를 열어, 미래의 불자들을 정성들여 키우는 일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찰이나 암자에 어린아이들이 모여들면 불교가 흥하고, 사찰이나 암자에 어린아이들의 발길이 끊기면 불교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