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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덕절 흥국사興國寺-8상탱八相幀

기자명 법보신문

서울 동켠인 수락산水落山의, 남쪽자락 동기슭인 덕능德陵골에 앉은 흥국사. 선조宣祖 아버지 덕흥군(德興君, 1530-1559)의 무덤 덕릉德陵 언덕 동쪽밑자락이다. 선조는 임금이 되자(1567-1608), 아버지를 덕흥대원군이라 하니 바로, 최초의 대원군大院君이다. 그리고, 아버지 덕릉을 위해 곁에 있던 수락사 흥서암興瑞庵을 크게 키워 흥덕사興德寺라 이름 올린다(1568). 따라서, 살갑게 또 불린게 덕절!

조선은 임금 잇는 씨알이 잘 차지 못한다. 인종의 배다른 아우 명종(1545-1567)도 아들 없어 아버지 중종의 9째인 덕흥군의 3째가 선조고, 선조 손자가 인조니 인조는 흥국사興國寺로 아예 높이 고친다(1626). 무수리 아들 영조가 임금 되게 목숨 받친 덕흥군집안인데다, 흥국사·진관사가 100날을 기도한 탓인지 손자 정조도 순조(1790∼1834)를 낳으니 수首사찰로 높여(1790) 고치고 돌봄에 순조도 마찬가지! 순조 외아들 익종-헌종-철종-고종-순종들로 이어짐에 함께한 절이다.

곧, 익종(翼宗, 1809-1830)도 순조보다 먼저 죽고, 그 외아들 헌종(憲宗, 1834∼1849, 23살 요절)과 강화도령 철종(1849∼1863, 33살 병사)도 아들 없자, 다시 인조의 3째인 인평대군 후손이자, 사도세자의 서자가 된 아버지를 둔 흥선군(1820∼1898)은 영조의 손자의 손자(玄孫) 자리가 되어, 그 2째 명복命福이 고종(1863∼1907) 되니! 흥선군은 두 번째 대원군(興宣大院君)이자 살아있는 첫 대원군大院君이 된다(1863?). 더구나 흥선興宣대원군의 처외가도 바로 덕흥대원군집안이니!

서가모니 삶을 8길로 내보인 8상탱八相幀을 모시고 살핀(지금은 큰방大房에 있음), 이름마저 다른 만월보전滿月寶殿은 달리, 6모六角 난데다! 오른쪽에 높게 잡아 올라앉았다. 기둥글柱聯은 흥선대원군 글씨!

몇 10나라 가운데서 점지한, 착하고 깨끗한 카필라나라 흰쌀밥임금=정반왕(淨飯왕=白淨왕)의 마야왕비가 100날 빌어 태어난 싯다르타태자. 흰코끼리 탄 꿈에, 옆구리에서 태어남(왕족), 빛나는 흰몸으로 나자마자, 4방으로 7걸음씩 연꽃 위를 걸으며 오른손은 하늘 왼손, 땅 가리키면서 「홀로 높고 귀하다」함, 이에 9룡의 향수와 덥고 찬 우물로 씻기는 그림들을 비쳐내 그려 잘 모신 뜻은 무엇보다, 내내 올곧은 임금씨 바램임을 알게 한다.

덕절중은 불때면서 불막대로 시왕초十王草를 낸(그린)다」는 값은 한 솜씨라(1869, 고종6).

유교의 조선이, 최초의 한글불경으로 8상을 말하는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월인석보(月印釋譜, 1459)를 굳이 펴낸 까닭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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