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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팔정도의 정신

기자명 정승석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정의-요익중생 실현하는 조화의 수레바퀴”

외양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바퀴가 튼튼하지 않은 수레는 쓸모가 없다. 수레의 생명은 바퀴이다. 수레는 바퀴에 의해 움직이면서 수레로서의 기능을 발휘한다. 바퀴가 부실하거나 망가지면 수레는 마침내 폐기되어 그 이름마저 잃고 만다.

그러므로 수레를 오래도록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바퀴를 잘 보존해야 한다. 수레를 지탱하는 바퀴는 바퀴통과 바퀴살과 바퀴테로 이루어져 있다. 바퀴테는 지면과 마찰하면서 굴곡이나 돌멩이와 같은 장애들을 감당하여 해소해 준다. 바퀴살은 이 바퀴테의 부담을 분산시키면서 그것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탱해 준다. 이 바퀴살의 지탱력을 모아서 굴대에 전달하는 바퀴통은 바퀴가 원활하게 구를 수 있게 한다. 바퀴를 잘 보존한다는 것은 바퀴통과 바퀴살과 바퀴테를 항상 세심하게 살펴서 잘 닦고 보수한다는 것이다.

불전에서는 흔히 중생을 열반에 이르게 하는 배 또는 뗏목과 같은 것이 8정도라고 비유한다. 그리고 8정도의 역할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리고자 할 경우에는 열반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삶을 수레에 비유하여, 8정도는 수레 바퀴와 같다고 한다.

8정도의 각 항목은 바른 인식인 정견(正見), 바른 마음가짐인 정사유(正思惟), 바른 언어인 정어(正語), 바른 행동인 정업(正業), 바른 생활인 정명(正命), 바른 노력인 정정진(正精進), 바른 명심인 정념(正念), 바른 안정인 정정(正定)이다. 잡아비담심론이라는 불전에서는 정어와 정업과 정명은 바퀴통과 같고, 정견과 정사유와 정정진은 바퀴살과 같으며, 정념과 정정은 바퀴테와 같다고 설명한다.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원동력



바퀴가 거친 지면을 구를 때, 바퀴테는 튼튼할수록 지면의 장애들을 잘 견디어 수레를 더 안전하게 한다. 바퀴테가 감당하는 거친 지면이 우리의 산란한 마음과 같다고 한다면,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정이나 이 정정을 도모하는 정념은 바퀴테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바퀴의 움직임은 바퀴통으로부터 시작된다. 굴대와 바퀴살이 연결된 바퀴통은 바퀴를 움직이는 동력의 중심인 동시에 기반이 된다. 수행의 구체적인 활동은 바른 언어와 행동과 생활인 정어와 정업과 정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이 셋은 바퀴통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바퀴살은 어떤 능력을 작용하는 지혜처럼 바퀴통의 동력을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배분하면서 바퀴테가 잘 유지되도록 돕는다. 정견과 정사유와 정정진 또는 정념은 수행 과정에서 정정을 도모하는 지혜를 낳는다. 이 점에서 이것들은 바퀴살과 같은 역할을 맡는다.



인격완성의 수단-방법



이처럼 8정도의 항목들은 서로 협력하여 열반이라는 인격 완성의 수단과 방법이 된다. 8정도는 열반을 보조하기도 하고, 열반에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비바사론에서는 열반이 왕과 같다면 8정도는 대신과 같다고 하며, 열반경 북본에서는 열반이 성(城)과 같다면 여래는 문지기와 같고 8정도는 문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효과적인 수단일지라도 거기에 바른 정신이 깃들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없다. 잡아함의 제770경에서 부처님은 정견을 예로 들어 8정도의 정신을 간명하게 제시한다.

“수행자는 정견을 닦아야 한다. 정견을 닦지 않으면, 의롭지 않고 널리 이롭지 않은 고통을 짓는다. 정견을 닦지 않음으로써 의롭지 않고 널리 이롭지 않은 고통을 짓기 때문에, 나는 정견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정견을 닦아야 한다.”

부처님은 나머지 일곱 항목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첨언하여, 8정도의 정신이 결국 정의와 요익(饒益) 중생을 실현하는 데 있음을 천명한다.

8정도가 중도의 실천임을 누차 강조하는 것은, 8정도가 유연한 정신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노력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현악기일지라도 너무 느슨하거나 너무 당긴 줄로는 제 음색을 낼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쪽의 생각이나 방법에 치우치지 않고, 한 개인의 이익과 불이익을 초월하여 한결같이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는 조화로운 노력이 중도인 8정도이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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