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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론현의는 백제 문헌 아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07.1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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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교수, ‘사론현의 백제찬술설’ 정면 반박
한국사연구서 반론 제기…중국저술 가능성 시사

대승사론현의기가 백제에서 찬술된 한반도 최고(最古)의 불교문헌이라는 최연식 목포대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동국대 불교학과 김성철〈사진〉 교수는 「한국사연구」 137집에 「대승사론현의기는 백제에서 찬술되었나-최연식 교수의 백제 찬술설에 대한 반론」을 발표했다.

김 교수의 논문은 지난해 10월 최연식 교수와 독일 보쿰대 플라센 교수가 한국사연구회에서 ‘한국 최고의 불교문헌 대승사론현의기의 재발견’을 발표할 당시 토론으로 참가했던 김 교수의 반박내용을 토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학술대회에서도 사론현의의 백제찬술설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던 김 교수는 이번 논문에서도 “백제에서 찬술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성철 교수는 한국사연구 123호에 실린 최연식 교수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제기를 했다.

◆보희연사 기원운공

두 학자의 논쟁에서 가장 초점이 되는 부분은 ‘금시차간 보희연사 기원운공(今時此間 寶喜淵師 祇洹雲公)’이라는 부분이다.

최연식 교수는 이 구절을 ‘지금 이곳의 보희사의 연사와 기원사의 운공’으로 번역하면서 “2000년 4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에서 보희사라는 사찰명이 보이므로 이 글이 쓰여진 곳은 백제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성철 교수는 “보희연사가 보량법사를 잘못 필사한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승사론현의기는 오사된 글자가 특히 많은 문헌인 점을 미루어볼 때 보희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구절의 전후맥락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최 교수의 주장과 전혀 다른 추정도 가능하다. 이 구절의 앞부분에는 혜균이 열가지 이설에 대한 소개와 비판을 늘어놓고 있는데 여기에서 진여성이 불성의 정인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바로 보량과 법운이었다. 따라서 보량법사의 량(亮)자를 희(喜)자로 오독하고 법(法)자를 삼수변을 공유하는 연(淵)자로 오독하여 보희연사로 잘못 필사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김 교수는 따라서 “보희연사는 백제에 있었던 보희사의 연법사가 아니라 송·제 양대에 걸쳐 생존했던 금릉 영미사의 보량법사이며 기원운공은 백제에 있던 기원사의 운공이 아니라 금릉의 광택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보량의 제자 법운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노(吳魯)는 어디인가

김 교수는 또 오노(吳魯)가 중국 강남과 강북지방을 묶어서 부르는 용어이므로,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중국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최연식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오와 노라는 용어는 시간적으로 다른 시대에 사는 타자로도 사용이 가능하다”며 “대승사론현의기에 나타나는 오와 노는 이방으로서의 중국이 아니라 분립되었던 과거의 남조와 북조, 즉 수당 시대에 바로 앞 시기인 남북조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왜 하필 탐라를 지칭했나

김 교수와 최 교수의 의견이 엇갈리는 또 하나의 주제는 대승사론현의기에 등장하는 탐라라는 지명이다.

현재의 제주도를 지칭하는 탐라라는 지명을 중국인들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저 무식한 탐라놈들 같으니라구’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최연식 교수는 이같은 이유를 들어 탐라를 멸시하는 혜균의 발언은 ‘이곳’이 백제일 때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성철 교수는 “설혹 백제인들만 탐라 관련 정보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백제와 남조 사이에 인적 물적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그 정보가 혜균에게 전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사론현의에서 탐라를 거론했다는 점이 백제 찬술을 입증하는 결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성철 교수는 또 “다른 학파나 그에 소속된 사상을 멸시하는 배타적인 태도는 혜균 뿐만 아니라 길장의 저술에서도 발견되며, 둘의 스승인 법랑도 역시 그러했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파사현정의 방법론으로 가르침을 드러내는 삼론학파의 가풍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사연구회에서 발발한 두 학자의 논쟁은 각각의 연구물이 한국사연구 136집과 137집에 연달아 게재되면서 또다시 역사학계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후 전개될 최연식 교수의 반론이 자못 기대된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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