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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이제 변해야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개항과 더불어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고, 근대 한국사회는 여러 종교가 혼재하는 다종교 상황으로 전환되었다. 이 무렵 불교도 변하고 있었다. 1885년에 승려의 도성출입금지가 해제되고, 1902년에는 경성에 원흥사가 낙성되었으며, 정부가 사사관리서를 설치하고 운영을 공포하여 불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불교는 오랜 억압과 수탈로부터 해방되었다.

500년 억불의 그 길고도 어두운 굴을 벗어난 불교계는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다. 당시의 화두는 유신이었고, 그 중요한 과제는 포교와 교육 등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불교계에는 수구세력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불교의 발전을 가로막는 또다른 세력도 있었다. 제국주의의 거대한 힘을 배경으로 한 일본불교와 기독교였다. 일본불교는 침략의 흉계를 감춘 채 웃는 얼굴로 다가서고, 제국의 힘을 배경으로 하는 기독교는 삿대질을하면서 왔다. 문명개화론자들은 불교를 향해 발길질을 하고 조선총독부는 이미 왜색으로 물든 불교를 사찰령이라는 제도적 올가미로 옥죄었다.

반면 기독교는 서구 열강세력과 더불어 문명개화론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개화론자들이 생각한 문명개화란 결국 서구화의 과정이었고 기독교를 서양문명의 원천으로 파악한 그들은 문명개화를 위해서는 기독교를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용성은 “다른 종교의 교당에서는 종소리가 쟁쟁하며 교중이 만당하였으나, 우리 불교 사찰은 적막하기만 하고 사람이 없으니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라고 탄식했다. 또 한용운은 종교간의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에 “불교는 패잔병마저 모으기가 어렵고 항복의 깃발마저 세울 힘이 없는 실정”이라고도 했다. 이처럼 당시 불교계에는 기독교에 대한 경계심과 위기감이 팽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일부 수구파 승려들은 “누가 감히 불교와 경쟁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금일은 종교경쟁시대라고 하지만 천상천하에 유아독존한 대교(大敎)를 향하여 누가 감히 경쟁하겠느냐”고 큰소리만 쳤다. 불법은 천겁을 지나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 보수파 중에는 개혁이나 유신을 주장하는 유신파를 파순(波旬)의 유혹에 빠진 것이라고 공격할 뿐 변하는 시대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 결과 불교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소외되었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불교는 전통종교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1000년 전통을 지켜오며 법등을 밝히는 절이 한둘이 아니고, 문화유산을 간직해오는 전통사찰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을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박제화된 전통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그리고 가속도로 변하고 있다. 통신과 교통의 혁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전자기기로 인한 현대인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자유무역의 확대가 가져올 일상생활의 변화 또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불교는 산속의 전통고찰에서 편안히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변화하는 21세기의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며, 미래 인류를 어떻게 구제할 지 마땅히 고민해야 한다. 10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한두 가지 지엽적인 계율의 문제에 집착하거나 전통을 고수하는 일로 만족할 수는 없다. 만약,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제정된 강원의 교과과정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전통의 계승으로 자랑하고 있다면, 그 교과목 중의 한두 가지를 바꾸려 했던 해인사 강원이 큰 문제가 되는 현실이라면, 아직도 강원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토론만 하고 있다면, 천겁이 지나도 불법은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불교 이제 변해야 한다. 변해도 크게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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