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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스님의 역할은

기자명 법보신문

정 구 복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불교에서의 시간관은 영겁의 시간을 꿰뚫고 있다. 1겁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이에는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되고 있다. 그 중 한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20리 되는 성안에 가득 채워진 겨자씨를 백년에 한 알 씩 집어내어 이를 다 집어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을 1겁이라고 한다. 이는 천문학적 계산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다. 우리 인간은 오래 사는 사람의 경우에 겨우 겨자씨를 하나 집어내는 백년에 불과하다. 짧은 100년의 삶은 현세의 삶을 말할 뿐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과거세와 미래세의 삶이 있으니 모든 사람의 삶이 영겁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에 태어난 인간으로 태어난 확률은 로또 복권의 당첨률보다 몇십 배, 몇천 배 더 훨씬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들이 자유롭고 풍요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이 얼마나 축복 받은 것인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불교에서는 세속의 역사를 중시하지 않았다. 불교가 동양에 전파된 후 불교의 역사는 고승전의 형태로 기록되었을 뿐 몇 백년 지속되는 왕조의 역사를 스님들은 외면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시대, 어디에 때어나느냐에 따라 그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태어난 스님은 고승으로서 국왕과 국민으로부터 지극한 존경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에 태어난 스님은 천민으로 취급되어 국가의 각종 사역 즉 성을 쌓는 일, 물건을 만들어 바치는 일에 일생동안 종사하여야 했다.

현재의 스님도 남쪽의 대한민국에 태어난 스님은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만 북쪽에 태어난 스님은 이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스님도 세속의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부처님의 마음을 일반 불자 및 세속인에게 전해주었고 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신라의 원광은 전쟁에 죽어간 사람의 영혼을 빌어주기 위해 팔관회를 열었고, 의상대사는 당나라의 정보를 고국에 전하기 위해서 귀국을 앞당겼다. 또한 조선조의 서산대사 휴정과 송운대사 유정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전국사찰에서 승병을 일으켜 싸우게 하였다. 특히 송운대사는 교섭 차 대마도에 파견되었다. 그는 왕의 허락도 없이 일본의 수도에 가서 포로로 잡혀간 1300명의 동포를 송환해오는 일을 직접 주선하였다. 이후 9000명의 포로가 송환해오는 길을 터놓았다. 그래서 송운대사는 유학자와 스님의 제사를 밀양 표충사에서 함께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스님이란 말에서 스승이라는 말이 나왔다. 오늘날 스승의 상이 크게 추락하고 있다. 이에는 스님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스님은 자신의 마음공부도 중요하지만 현세의 마음과 몸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중을 제도하여 역사를 발전시킴에 중요한 책임이 있음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에는 가족, 지역사회, 국가사회, 인류 사회의 역사가 있다. 많은 인류는 현세만을 알고 과거세와 미래세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세만의 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일들을 많이 한다. 불교의 견지에서 보면 매우 우매하기 짝이 없다. 이런 대중의 제도를 외면하는 스님은 참된 스님이 아니다.

나무나 돌, 금속, 흙으로 만든 불상이 그 자체가 부처님이 아니듯이 스님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 스님이라고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스님들은 대중과 대화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한 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이 역사창조의 주역이다. 스님들은 절에 찾아와 복을 빌어달라는 사람만을 위해서 봉사하거나 불사를 일으킴에 헌신할 것이 아니라 한 배를 타고 가는 역사의 주역인 이 시대의 수많은 중생을 제도함에 깊은 성찰과 적극적인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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