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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⑤

기자명 법보신문

모든 언설은 분별심으로 지은 이름일 뿐

이제부터는 기신론의 핵심 부분인 해석분을 설명할 차례이다.

해석분은 지난 시간에 입의분에서 밝힌 일심(一心), 이문(二門), 삼대(三大)를 구체적으로 논술한 것으로 이는 크게 현시정의·대치사집·분별발취도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바른 뜻을 드러낸다는 현시정의 가운데 먼저 일심의 심진여문을 밝히고자 한다. 일심 즉 중생심에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이 있으며 이 둘 진여·생멸 이문의 관계가 불상리성을 가진다는 것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기신론은 심진여란 바로 일법계(一法界)이며 대총상법문의 체(大總相法門體)라고 한다. 여기서 심진여를 일법계 즉 일심이라고 한 것은 생멸문과는 별다른 진여문(별상의 진여문)이란 뜻이라기보다는 진여·생멸의 두 문을 통틀어 포괄하는 총상법문을 의미한다.

또 법문이라 할 때 법은 궤범으로써 참된 이해를 낸다는 뜻이고, 문이란 통틀어 열반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체란 진여문이 의지하는 체이니 결국 일법계 전체가 생멸문이 되는 것처럼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미진이 와기들을 이루므로 미진이 모든 와기들의 통상이어서 통상 이외에 따로 와기가 없고, 또한 와기들은 모두 미진에 포섭되니 와기문이 미진을 포섭하는 것처럼 진여문·생멸문은 하나가 아니면서도 둘이 아니다.

따라서 생멸문을 떠나서 진여문을 논할 수 없고 진여문을 떠나서 생멸문을 논할 수 없다. 일법계 즉 일심에 이 진여·생멸 이문이 모두 포섭되기 때문에 일법계 전체가 생멸문이 되고 또한 일법계 전체가 진여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일법계대총상법문의 체인 진여문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 일심인 진여에는 그 심성이 평등하여 과현미(過現未)의 삼세(三世)를 떠난 것이어서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다. 단 모든 존재 현상들은 오직 망념 즉 우리들의 분별심 때문에 차별이 있는 것이어서 만약 이 분별심을 여의면 모든 차별 현상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모든 존재 현상들은 본래 음성으로 말하는 언설이나 명구로 설명하는 이름, 명목 따위를 여읜 것으로 평등하고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파괴할 수도 없는 오직 일심일 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언설은 다만 분별심에 의해 임시로 지은 이름에 불과한 것이지 그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여는 분별심을 떠나고 언설을 떠난 것이지만 언설에 의해 분별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여기에 여실공(如實空)과 여실불공(如實不空)의 두 가지 뜻이 있게 된다. 여실공이란 필경에 실체를 나타내는 것이오, 여실불공은 그 자체에 번뇌가 없는 본성의 공덕을 구족한 것이다.

여실공이라 할 때 공은 본래 모든 염법(念法)과 상응하지 않음을 말한다. 즉 (객관대상의) 모든 차별상을 떠난 것으로 이는 (주관적으로) 거짓된 심념(心念) 즉 분별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진여의 자성을 언급할 때, 기신론은 유무(有無), 일이(一異)의 절사구(絶四句)를 써서 설명한다.

즉 진여자성은 유도 아니오(非有), 무도 아니며(非無), 유무를 함께 갖춘 것도 아니오(非有無俱),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도 아니다(非非有·非非無). 또한 같은 것도 아니오(非一), 다른 것도 아니며(非異), 같기도 하고 다른 것도 아니오(非一異俱相),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도 아니다(非非一相·非非異相).

진여의 본성은 중생의 망심, 분별심에 의해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공이라 말하지만 만약 분별심을 떠나면 실로 공이라 할 것도 없는 것이다. 여실불공이란 이미 진여자성이 공하여 허망함이 없음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 진여자성이야 말로 진심(眞心)이며 이 진심은 항상하여 변하지 않고 정법(淨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불공이라 한다.

그렇다고 또 이런 정법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되니, 왜냐하면 이 망법을 여읜 불공의 경지는 오직 증득함으로써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는 이에 대해 공과 불공이 이 둘의 차이가 없음을 말한다.

불공이라 말하지만 취할 만한 상이 없기 때문에 불공이 공과 다르지 않으며, 분별하여 반연하는 바를 여읜 경계는 오직 무분별지로 증득함으로써만 상응한다는 것이다.
 
은정희 전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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