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로 가면, 여러 문을 거친다. 일주문 다음이 금강문金剛門이고 그 뒤가 (4)천왕문…들이니, 금강문은 바로 안문中門. 여기에 문지기門神 사내가 서 있다. 일러, 금강역사金剛力士. 그래서 금강문. 아예, 달리 인왕仁王문으로 하기도 하는.
말 그대로 문지기니, 툭툭 불거진 힘 넘쳐나는 몸(매)·얼굴로 버텨 섰다-절과 불법을 지키느라. 윗옷 벗어젖힌 떡짝가슴을 드러내고, 부릅 부라린 고리눈의 굳은 낯에, 불끈 쥔 주먹금강拳 차림이다. 금강저杵란 벼락霹靂공이인 방망이를 쥐기도 한.
그 무엇이든 막고 내칠 수 있는 그래서, 그리 단단하고不可破壞도 귀하다寶中之寶는 금강 곧, 다이아몬드 바로, 다이아는 인도말로 바즈라伐折羅·伐羅니, 금강역사인 금강신神은 바즈라-파니!
늘, 문 양가에 짝으로 있어 2왕二王으로도 부르고, 아예 역으로 인왕仁王이라며 여기에 따른 인왕경經까지 있다. 그러나, 본디는 1사람! 곧, 절과 불법을 지키겠다는 법의法意태자가 나선 것이나(大寶積經), 문지기로 양쪽에 서자니 그만 짝으로 나타내게 된 것. 그러자 왼쪽은 입 벌린 아阿금강, 오른쪽은 입 다문 음(훔←인도)금강에 이는, 날·들숨의 기氣부리는 입꼴이다!로 까지!! 나아감.
어쨌거나, 이 지킴이는 석굴암(석불사)의 안문(벽)을 비롯한 문 뿐아니라, 탑몸에도 있고 나아가, 시왕상十王像이 있는 지옥채(지장전·명부전·시왕전)에도 있다-집 안의 가쪽 문턱에 서서. 여기서는 작은 꼴이다. 그 뒤로는 시왕이 벌려 앉은.
덕절 시왕전十王殿(1821, 순조21→1870, 고종7)에도 나무로 깎은 게 있다. 문쪽에서 갈라선 게 아니라, 왼쪽에다 나란히 모아 놔 버리고 있다. 이러니 어느 게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렵다-둘 다, 입도 다물고 올린 팔도 같은 쪽이라.
그런데, 오른쪽 금강역사는 어디서도 못 보던 놀라운 거다!-거의가 왼쪽꼴의 얼굴인데. 툭 불거진 미간에, 크고 기∼ㅍ게 패인 눈구멍! 짧고 높이 옥은 매부리코, 코에 바싹 붙은 얇고 부드러운 입술 그리고 곱슬의, 눈썹과 구레나룻과 턱수염에 가는 주걱턱의 짙붉은 얼굴의!
마치 하회탈을 보는 듯, 조선궁중잔치마다 추는 처용무(5광대) 처용處容같은 바로, 서역사람꼴인-서라벌 괘릉掛陵에 버텨선 돌장수를 그대로 닮은!
벽에 걸린, 진관사와 함께 100날기도 뒤-덕흥대원군 후손 정조 아들 순조가 남(1790, 정조14)을 기린 시왕탱(1792)과 같은 때로 볼, 아주 뛰어난 솜씨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