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心 주고 떠난 아내의 원력으로 약왕보살 삶 살지요
佛心 주고 떠난 아내의 원력으로 약왕보살 삶 살지요
  • 법보신문
  • 승인 2007.08.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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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약사보리회 류 창 수 회장

‘설렘 반, 두려움 반’, 2002년 2월 동산불교대학 20기 입학식장에 선 류창수(67·보천) 거사의 마음이 그랬다. 그러나 그 마음은 새로운 배움에 대한 기대에서 오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투병중인 아내의 간절한 소망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시작한 공부지만, 행여 이 공덕으로 아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온 속내였다.

새 천 년을 맞이한 지 채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난 30여 년간 부부 약사로서 함께 약국을 운영하며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온 그에게 아내의 갑작스런 암 발병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 그리고 믿음직한 동료 약사로서 충실했던 그녀였다. 게다가 신심 돈독한 불자로 작은 시간적 여유만 생겨도 염주를 돌리고 절을 하며 일체만물이 행복하기를 발원하는 착한 도반이 아니었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꾸만 과거의 잘못들이 떠오르며 이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 권유로 동산불교大 입학

“오히려 아내가 수술을 받으면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며 저를 위로하더군요.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 불교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며 불교대학에 입학할 것을 권유하는 거예요. 거절할 수 있나요. 그렇게 계기가 돼 동산불교대학에 입학을 했고 불법에 귀의하게 됐어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서였을까, 류 거사는 무섭도록 불교 공부에 매진했다. 아내를 위해 일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에 빠져들었다. 2년 후에는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해 장학생으로 동산대학원에 진학했다. 특히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 10만 8000번 사경을 6개월 만에 회향해 동산불교대학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아내의 병세는 나날이 깊어만 갔다. 수술은 물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가 병행됐지만 힘겨운 시간만 길어질 뿐 차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는 의사의 진단은 또 한 번 그를 절망의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아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도 좀처럼 내색을 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고통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은 듯 참선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아내의 모습은 장좌불와 하는 선인을 보는 듯 했어요.”

그가 봉사를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움에서 그칠게 아니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는 아내의 조언에 따라 불자약사보리회 활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류 거사의 곁에는 언제나 아내가 함께했다.

2005년 부처님오신날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렇게 의연하게 병마에 맞섰던 아내였건만 그녀 역시 삶에 대한 미련만은 어쩔 수 없었던지, 자신을 대신해 봉정암에 다녀올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오르기 시작한 봉정암 가는 길은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험악한 산길은 오르고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힘에 부쳤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과거, 아내는 그와 가족을 위해 이 길을 수없이 오르고 또 오르지 않았던가. 그의 눈에는 발을 뗄 때마다 한 방울 두 방울 이슬이 맺혔다.

“초파일부터 그해 8월 말까지 주말마다 봉정암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일곱 시간은 족히 걸리더니 나중에는 서너 시간이면 도착할 만큼 익숙해지더군요. 아내의 쾌유를 기원하는 간절한 발원을 담아 매번 1000배를 올렸어요. 9월 이후에는 아내의 증세가 심각해져 잠시도 곁을 떠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불자약사보리회 활동만큼은 아내의 설득에 못 이겨 빠지지 않고 동참했습니다.”

아내 죽음에 개종마저 고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2006년 3월 그의 간절하고도 절박한 바람은 무너졌다. 4년여 동안 한 결 같이 부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했건만 아내는 그와의 인연을 다했다. 몇날 며칠을 눈물로 보내며 아내의 죽음을 슬퍼했다. 아내의 손때가 묻어있는 약국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문을 닫았다. 잠시라도 다른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새 두 뺨에는 굶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극심한 슬픔은 우울증마저 유발시켰다. 원망을 쏟아낼 누군가가 필요했다. 내면 깊이 있는 일체의 원망을 토해낼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부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커지더군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며 공부하고 수행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회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처님이 저를 외면한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배우고 공부했던 제행무상(諸行無常)도 제법무아(諸法無我)도 현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요. 당시는 부처님을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 심각하게 개종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사구게 법문에 참회 눈물 쏟아내

<사진설명>류 거사는 “부처님의 대원이 성취되도록 발원·노력하고 게으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도반들이었다. 대한불교약사회 도반들이 그를 서울 돈암동 광륵선원으로 불러 절을 하라며 강권한 것. 부처님을 마주하는 것도 머리를 숙이는 것도 싫었지만 무언가 집중하지 않으면 우울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도반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절을 시작했다. 그리고 도반들도 호법신장처럼 류 거사의 곁을 지키며 함께 절을 해주었다. 절을 시작한지 두 달이 지났다. 도반들은 여전히 곁을 지키면서 절을 하는 그를 응원이라도 하듯 『금강경』을 읽어주고 있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사구게를 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 모두가 허망하다’는 이 구절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눈물 때문에 한참을 엎드려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분명 이제는 아내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세연이 다됐으니 이를 받아 들여야 한다는 의미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부처님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겨누고 있었던 데에 대한 참회의 씨앗이었다.

“지난해 9월 불자약사보리회에서 회장 소임을 저에게 부탁해 왔습니다. 한동안 부처님께 불경을 저질렀던 저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보리회 회원들이 참회의 기회로 삼으라며 다음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맡으라는 거였어요. 차마 거절할 수 없더라고요.”

류 거사의 서원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하는 법사가 되는 것이다. 아내의 간병으로 잠시 중단했던 대학원에서의 불교 공부를 조만간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볼 수 있도록 불자약사보리회의 역량을 확대하는 것도 그의 서원 중 하나다.

“문득문득 뒤늦게 불교를 접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법사가 되는 공부도 해야 하고, 수행도 집사람 수준 정도는 도달해야 하는데…. 집사람이 떠나기 전 제게 참 좋은 선물을 주고 간 것 같아요. ‘온갖 고통으로 시름하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온 몸으로 구하는 부처님의 원이 성취되도록 발원하고 노력하며 게으르지 않겠다’는 제 서원은 아내의 선물에 대한 저의 답례입니다.”

환한 미소로 서원을 밝히는 그의 얼굴에는 장대 같은 폭우가 거친 뒤 드리워진 햇살처럼 밝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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