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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그리운 큰스님 불호령

기자명 법보신문

윤 청 광
방송작가

속세에서 살고 있는 중생들은 대부분 권세와 재물과 명예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세 가지 욕심에 색욕이라는 욕심 한 가지를 더 채우려다가 패가망신을 자초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끝없는 권력욕, 재물욕, 명예욕, 그리고 색욕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전 세계 인류의 손가락질을 받는 영원한 치욕을 받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인천(人天)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자동적으로 누리게 되어있는 권세의 최고봉 임금 자리도 스스로 내던지고, 재물, 명예도 버린 채 출가하여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마저 절제한 채 일일일식(一日一食)의 처절한 수행을 평생토록 실천하셨고 권세와 재물과 명예를 물위의 거품이요, 풀잎 위의 이슬이요, 번갯불 같고 그림자 같은 허망한 것이라 설파하셨다. 그래서 부처님은 권력에 아부하기는커녕 천하의 권력자를 엄히 꾸짖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으며 천하의 재력가에게도 자비와 보시를 가르쳐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타이르셨다.

근세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스님들 가운데도 권력알기를 우습게 알고, 재물을 돌같이 여긴 멋진 큰스님들이 수없이 많았다. 6·25전란 중 전몰장병 위령제를 올리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과 함께 부산 동래의 범어사를 찾아온 이승만 대통령이 법당 안에서 모자를 벗지 않은 채 손가락질로 불상을 가리키며 유엔군 사령관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동산 스님은 벼락 치듯 꾸짖었다. “누구든 법당에 들어오면 모자를 벗어야 하는 법이요, 불경스럽게 손가락질을 해가면서 부처님을 가리키는 것은 불가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금정산의 호랑이 하동산 스님의 이 호령 한마디에 대통령도, 유엔군 사령관도 즉각 모자를 벗어들고 사죄를 했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통쾌한가!

바로 이 하동산 스님의 제자로 출가했던 해인사 백련암의 성철 큰스님도 권력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큰스님이셨다. 1977년 구마 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해인사에 들러 저 유명한 ‘성철 큰스님’을 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올라갈 수 없는 백련암까지 대통령이 걸어서 올라갈 수 없으니, 백련암에 계시는 성철 큰스님이 해인사까지 내려오셔서 대통령을 영접해 달라는 게 청와대측의 부탁이었다. 이에 해인사 주지 스님이 부랴부랴 백련암으로 올라가 성철 큰스님께 통사정을 했다. “대통령께서 오시니까, 큰스님께서 큰절까지 내려가셔서 영접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딱 한 말씀하셨다.

“내는 산에 사는 중인데, 대통령 만날 일이 없다 아이가!”

성철 큰스님은 단 한마디로 대통령 영접을 거절해 버렸다. 그런데 오늘 우리 불교계를 돌아보면, 현직 대통령도 아닌 수십 명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일 뿐인 타종교 광신자에게 눈도장을 못 찍어 안달이 나서 견디지 못하는 얼빠진 인사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것도, 속세에 몸담고 사는 재가불자라면 특정후보에게 눈도장을 찍고 공로를 세워, 잘될 경우 훗날 밥먹을 자리라도 하나 얻을까 한다면 굳이 탓할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이미 삭발 출가한 스님의 경우라면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위해, 치사하게 타종교 광신자에게 추파를 던지는지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만일의 경우 불교성직자의 자존심도 체면도 다 집어던진 채 타종교 광신자를 도와서 그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현직 스님께서 그 밑에 가서 장관을 할 것인가, 차관을 할 것인가? 아니면 특혜 융자라도 왕창 받아서 재벌이 될 것인가?

기껏해야 그 사람의 재임 5년 동안 한두 번 청와대에 가서 밥 먹는 게 고작이요, 사진 한두 장 찍는 게 고작일 텐데, 세상에 그래 그 알량한 영광을 누리려고 불교성직자의 자존심도 체면도 다 벗어던지고 타종교 광신자에게 아첨한단 말인가? 정말 큰스님의 큰 가르침이 그립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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