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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⑦

기자명 법보신문

삼세육추는 무명훈습에 의한 마음 변화

지난 번 아라야식의 이의(二義)에 대한 중요성을 밝힌데 이어 오늘은 이의 중 불각의(不覺義)에 대한 구체적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기신론』의 순서에 따른다면, 각의(覺義)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겠지만 우리의 미오(迷汚)한 현실심을 설명하려면 먼저 불각의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청정한 마음이 무명의 훈습을 받아 불각심(不覺心)이 처음으로 일어나는 최초의 단계를 무명업상(無明業相)이라한다. 그러나 이 무명업상은 그 움직임이 너무나 미세하여 아직 주객미분의 상태이다. 갑돌이가 갑순이를 처음 대했을 때, 갑돌이의 마음에는 갑순이에 대해 거의 아무런 파문이 일지 않는다. 그러나 갑순이를 대하기 전과는 아주 조금 다른데, 이를 ‘꿈틀한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꿈틀’의 ‘꿈’도 아니고 ‘끄’의 단계가 시작될까 말까 한 경계이다.

다음은 무명업상의 지극히 미세한 동념(動念)에 의해 능견(能見)의 작용은 있지만 아직 소연경상(所緣境相)은 드러내지 않고 다만 밖으로 향하고 있을 뿐 경계(대상)를 의식하지 않는 상태, 즉 갑돌이가 갑순이를 대하여 ‘끄’의 단계가 시작되었지만 갑순이를 바라만 볼 뿐 그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이를 능견상 또는 전상(轉相)이라 한다.
 
이제 세 번째 경계상(境界相 즉 現相)은 앞서 전상의 능견작용에 의해 마치 맑은 거울이 만상을 나타내는 것처럼 경계가 나타나게 되는 상태이다. 즉 갑돌이가 갑순이를 대하면서 비로소 인식하게 되지만 이것은 그냥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뿐, 아직 아무런 호오(好惡)의 감정을 갖지 않는 것이니 여기서 ‘꿈틀’의 ‘꿈’ 정도의 단계가 된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업상, 전상, 현상은 매우 미세하여 이를 삼세(三細:세 가지 미세념)라 하며 이는 아라야식의 자리에 있음을 원효는 그의 소·별기에서 매우 강하게 주장한다. 이 무의식 단계인 업, 전, 현의 삼상은 그 마지막 경계상에 의해 다시 육추(六)의 첫 단계인 지상(智相)으로 발전한다. 이 지상은 경계가 본래 마음(心)에서 나타난 것임을 모르고 마음 밖에 실재하는 것으로 망상하여 이에 개개의 사물을 좋다, 나쁘다라고 헛되이 분별한다.

즉 갑돌이는 갑순이를 대하자 꿈틀하면서 비로소 좋다는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는 대상을 경험한 후에 일어나는 좋다는 감정이 아니고 대상을 대할 때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선험적인 호오의 감정이다. 원효는 이 제칠식의 지상을 아치, 아견, 아애, 아만의 네 가지 번뇌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상 다음으로는 상속상이다. 앞의 지상에 의해 고락(苦樂)을 내고 그 고락의 생각이 상응하여 계속되는 상태이다. 즉 갑돌이의 갑순에 대한 좋은 감정이 계속되어 끊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이 상속상에 의하여 다시 경계(대상)를 연념(緣念)하고 호오를 분별함에 의해 고락의 생각을 계속 가지고 다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자리가 집취상(執取相)이다. 즉 갑돌이는 갑순이에 대해 좋다는 생각을 지속시키면서 점점 더 집착을 하게 되는 상태이다. 이러한 집취상의 헛된 집착에 의해 다시 바깥 사물에 대해 좋다든가 나쁘다는 임시 이름을 세우고 그 이름의 상을 분별, 계탁하는 것이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다. 즉 갑돌이의 갑순이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해져 이제는 갑순이처럼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매 등에만 좋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마지막 기업상(起業相)은 앞서의 갑순의 이미지에 집착함에 의해(즉 더욱 강해진 집착심에 의해) 다시 생각을 일으켜 선악을 만들어내는 자리이다. 즉 갑순을 위해 갑돌이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업계고상(業繫苦相)은 제칠식과 육식에 해당되는 육추 중에서 칠식을 제외한 제육식에서 생긴 과보로서 삼계육취(三界六趣)의 괴로운 과보를 받아 자제하지 못한 상태이다. 즉 갑돌이는 갑순이로 인해 괴로움에 빠진다.

무의식에 해당하는 삼세에 비해 지상을 제외한 육추는 이름 그대로 그 의식의 흐름을 우리 범부들이 능히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거친 의식이다. 이상의 삼세육추의 순서는 자성이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무명의 훈습을 받아 어떻게 점점 거칠게 변화해 가는가(染法緣起)를 설명한 것이며, 이러한 미오한 현실심을 수행, 극복하여 원래의 청정한 심원(心源)에 도달할 수 있는(淨法緣起) 방안을 설명한 것이 시각(始覺)의 사(四)단계이다.
 
은정희 전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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