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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선사와 거사와 선생

기자명 법보신문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설악산 백담사에서는 금년 여름에도 만해축전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만해의 호칭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던 것 같다. 만해를 선사로 호칭할 것인가 거사라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지만, 그래도 선사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생존 시에도 만해에 대한 호칭은 여러 가지였다.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는 흔히 만해선생으로 불렀다. 그리고 만해의 제자들도 대개 선생으로 호칭했다. 해방 직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이 주최하는 만해의 두 번째 제사인 대기(大朞) 추모행사에서도 선생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때로는 잡지에서 그를 거사나 처사로 호칭하는 경우도 있었다. 「혜성」 1931년 8월호에는 유동근 기자의 ‘만해거사 한용운 면영(面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삼천리」 1936년 6월호에는 ‘당대 處士를 찾어’라는 기획 연제 중 그 2회로 ‘심우장에서 참선하는 한용운 씨를 찾아서’라는 탐방 기사를 싣고 있다.

물론 이들 잡지에서 거사나 처사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만해의 야인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한 것 같다. 만해의 열반을 알리는 글에서 ‘만해용운대종사’라고 했고, 1967년 탑골공원에 세운 비에는 ‘용운당대선사’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만해는 출가 수행자였지만, 산속에서만 지내지 않았다. 그는 입산과 하산을 되풀이하면서 수행하는 구도자·행동하는 지사의 모습을 보였다. 산 속에 있다고 해서 그는 이 세상을 등진 적이 없었고, 시중에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다녔다고 해서 세상의 먼지에 물든 사람은 아니었다.

만해는 바람 부는 세상의 거리,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었다. 금욕적인 생활로 자기를 지키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통해, 세상 속에서, 현실 속에서 불성은 실현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적은 선에 머물러 만족할 일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속 보배를 꺼내어 세상에 쏟아 놓는 적극적인 실천행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만해의 모습을 통해 그가 실천적 구도자 보살의 길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살은 고해의 뗏목이자 어두운 거리의 등불이며, 험한 세상의 다리다. 그리고 보살은 커다란 수레다. 수많은 사람들을 그 수레에 태우고 거친 광야를 지나 저 피안의 언덕으로 실어다 주기 때문이다. 그가 “당신은 행인, 나는 나룻배”라고 노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선사라 불린다고 자랑스러울 것도 거사라고 부른다고 화 낼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당대의 대표적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만해는 선사인가? 아니면 거사인가라는 질문에는 그는 출가자인가 재가자인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여 답하라는 질문에는 이미 치우친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만해는 선사이면서 거사였고, 동시에 그는 선생이었다. 만해의 면모는 다양했다. 『금강삼매경』에는 ‘비록 출가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재가에 머무르지 않는다(雖不出家 不住在家故)’고 한 대목이 있다. 원효는 이 구절에 주목하여 출가와 재가, 혹은 도속(道俗) 두 가지 모습에 치우치지 않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오늘의 한국불교, 너무 세속화 되어도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출가 중심으로 기울어도 좋을 것이 없다. 도속의 두 극단에 치우치면, 중도가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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