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 허물기와 역사 쌓기

기자명 법보신문

정 구 복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사 허물기와 역사 쌓기라는 용어는 생소한 말이다. 특히 역사 쌓기란 용어는 필자가 5년 전부터 역사 허물기의 대칭용어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 두 가지 용어로는 인간이 의식적,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역사와 역사적 유물을 없애거나 새로이 세워 이를 유지 발전시키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 허물기로 기억되는 최초의 사건은 1896년 독립협회에서 조선왕조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국왕이 맞이했던 영은문(迎恩門)을 중국에 대한 사대의 상징이라고 하여 철거하고 이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패배로 청나라 세력과 간섭이 배제된 상황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 이름이 부적절하면 고치면 될 일이었다. 이로 인하여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역사의 유물을 헐어 없앴다.

또 하나의 역사 허물기는 조선총독부의 철거도 이에 속한다. 이를 헐어버린다고 해서 일제의 식민지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의 정부청사로 30여년간 사용해오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해온 역사까지를 허문 것이다. 대통령이 이를 정녕 보기 싫다면 청와대를 다른 곳으로 옮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역사 허물기 작업의 대표적인 것이 호적법의 폐지이다. 이 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예컨대 아이를 가진 과부가 개가를 하였을 때 새아버지와 아이들의 성이 다른 데서 오는 그 아이들의 심리적 부담을 들 수 있다. 또한 현재 결혼한 부부가 한 두 명의 자녀를 두기 때문에 남자 성 중심의 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논리는 아직은 빠르다. 위에서 든 호적법의 문제점은 이 시대에 맞게 예외규정으로 고쳐도 충분한 일이다. 많은 경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호적법 자체를 완전 폐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처사이다. 이는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속담과 같이 어리석은 처사다. 호적법은 500~600년의 역사가 담긴 법이고 우리 가족, 종족, 친족의 관습과 긴밀하게 얽혀 있는 법이다. 차기 정권에서는 내년 초부터 실시되기로 한 새로운 법을 폐기하고 반드시 환원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역사 허물기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역사 쌓기가 있다. 모든 인간은 역사를 만들어 가며 산다. 개인이건 국가건 간에 오랜 역사를 가진 경우 튼튼한 기반을 가지게 되며, 그 역사의 연륜만큼 운영의 지혜가 축적된다. 학회의 설치나 단체의 설립, 신도시의 계획에는 앞으로 수 백년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의 의지와 의식이 전제돼야 한다. 사립학교를 세운 경우 이 학교 운영을 위해서 설립자는 앞으로 학교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얼마만큼의 예산을 뒷받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배려가 있었어야 한다. 또한 폐교 직전에 있는 수많은 초등학교에서 학교의 역사를 쓰는 것과 개인이 부모의 일대기를 쓰는 것도 역사 쌓기 실천운동의 하나이다. 정당도 그렇다. 집권 시에 실정을 하여 차기 정권을 차지할 수 없다고 하여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은 역사 허물기요, 역사 쌓기의 정신에 위배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는 역사를 가볍게 보는 것으로 국민을 눈속임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깊은 산 속에서 의구한 산하와 함께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외롭게 500년 내지 천년의 고찰을 이름 없는 스님들이 지금까지 꿋꿋이 지켜온 것을 바라보면서 이를 교훈으로 삼아 역사 허물기보다는 역사를 쌓기에 전 국민이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 쌓기의 정신은 개혁만능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 상황에서 우리 국민이나 위정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역사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