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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란, ‘나’를 성찰하는 최고 인간학”

기자명 법보신문

통도사 주지 정 우 스님

<사진설명>“10년 뒤라도 죽는 날은 ‘오늘’이 된다”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 것을 당부한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

저는 1965년 중학교를 다니다가 출가를 했습니다. 40년이 넘었으니 이제 곧 60세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 법석이 ‘성공 릴레이 대법회’라 하니 저도 자랑 하나 하겠습니다.

20대 초반 사병 시절의 일입니다. 영장을 받고 군대를 갔는데 미치도록 절이 그리웠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다고 하듯이 저도 절을 떠나니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법당은 없고 종교활동은 하고 싶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있지요. 절에서 온 스님이 ‘할렐루야’를 같이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느 날, 절박한 심정으로 전체 중대원 앞에서 제가 아는 불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불교를 믿거나 믿고 싶은 사람을 모아서 법회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 인연으로 연대에는 호국 황룡사를, 사단에는 호국 일월사라는 절을 세웠습니다.

사병시절 법당 그리워 절 세워

저는 요즈음 미국 애리조나를 비롯해서 캐나다, 호주, 인도, 북인도 히말라야에 절을 짓고 있습니다. 천막 법당으로 시작해 일군 서울 양재동 구룡사는 2200평에 이릅니다. 일산에 있는 여래사는 연건평이 3천 평입니다.

얼마 전 저는 통도사 주지로 내려갔습니다. 사실 통도사에는 많은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등산객의 무분별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것부터 걷어치웠습니다. 지금 통도사에는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없습니다. 꼭 필요한 선원이나 강원에는 ‘출입금지구역’이라는 말 대신 ‘출입제한지역’으로 바꾸어 놓았고 때로는 ‘참선 중, 발길을 돌려주세요’라고 표시했습니다. 인간미가 좀 묻어나지 않습니까!

또 한 가지, 선원 스님 빼고 통도사에 소속된 스님들은 모두 명찰을 달고 다닙니다. 저도 ‘주지 정우’라는 명찰을 달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먼 산을 보고 있으면 어른 스님들께서는 가까이 다가와서 다독거리시며 ‘어디 아픈 데 있느냐. 고민이 있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냥 물은 것이 아니라 ‘아무개 스님’이라고 부르며 물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법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법명 만 알면 옛 스님들처럼 우리도 정겨운 절 살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명찰을 달도록 했습니다. 옛날 어른 스님들께서 이름을 부르며 손을 잡아주신 것처럼, 저 역시 미력한 힘이나마 후학들에게 그늘이 되고 싶습니다. 후학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보살피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저는 눈뜬 선지식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주제를 ‘나는 누구인가’라고 정했지만 저 자신도 이 주제에 선뜻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비유 설법 가운데 눈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얘기한 대목이 나옵니다. 눈 먼 장님처럼 아집과 편견에 치우치고, 하나 더하기 하나를 둘이라고만 고집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눈 먼 사람은 부분을 얘기할 것입니다. 장님이 부위별로 얘기해도 눈 뜬 사람은 코끼리를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저나 여기 모인 대중들이 아직 눈을 뜨지 못했더라도 그것을 취합해서 하나로 이어가는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나는 누구인가’라고 우리 스스로 되짚어 보자는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기쁜 마음으로 절에 오셨다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부처님 품안과 따뜻한 가정은 둘이 아닙니다. 옛날 성철 스님께서는 3천배를 해야 만나 주셨습니다. 삼천배를 끝까지 했다는 것은 견디고 극복했다는 말이거든요. 큰스님의 한 말씀 이전에 이미 소원성취를 다 끝낸 셈입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어느 스님께서는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훗날 통한, 회한의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재방송이 없다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생각보다 재방송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제 살았던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오늘 살았던 것처럼 내일도 그냥 살면 된다는 생각은 재방송입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생산적이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그러면서도 어울림 속에서 자주성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0년 뒤라도 죽는날은 ‘오늘’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네 가지 이치에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선지식을 가까이 하십시오. 세 사람이 걸어가는 데 좋은 사람은 귀감으로 삼고 모진 사람은 경계로 삼으면 두 사람 다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내 아내, 내 가족, 내 자식, 내 이웃이 스승이고 선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들으세요. 세 번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생각하십시오. 네 번째는 여실한 이 법을 닦아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신해행증’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믿고 이해하고 행동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얻어진다는 말입니다.

죽는 날은 오늘입니다. 우리는 오늘 죽을 겁니다. 10년, 20년, 30년이 있더라도 가는 그날이 오늘이라는 겁니다. 내일 죽을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내가 원하는 가정일까? 내가 원하는 부부간일까?’

저는 출가해서 지금까지 스님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힘든 적은 있었습니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인생에서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 이러쿵저러쿵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려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다면 ‘인생’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인간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포근하고 온화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스스로부터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포근한 이가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짧은 인생, 그 시간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고 피하고 받아들이면서 열두 고개를 넘듯이 여기까지 왔다면,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잘나서 통도사 주지가 되었다는 소리는 어림없습니다. 벽안 스님이 그 자상한 글로 보내 주신 편지, 천리 길을 마다않고 제가 살고 있는 곳까지 오셨던 월하 스님, 많은 어른 스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그리고 많은 불자들의 자양분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은사인 월하 스님께서는 ‘염염 보리심이면 처처가 안락국’이라는 말을 써서 보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마음에 보리심을 여의지 않으면 있는 그곳이 편안한 곳이지 편안한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탐, 진, 치 삼독심을 지니고 있는 한 극락에 갈 입구도 삼악도가 될 뿐입니다.

삼독심 있으면 극락도 삼악도

‘나’라고 하는 것을 현재로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내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삶, 모두가 이해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이라면 거기에서 참 행복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 모습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말로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이 법문은 부산광역시불교신도회(회장 공병수)가 9월 12일 부산불교신도회관에서 본지와 공동 주최한 ‘도심 포교 성공 신화 릴레이 초청대법회’ 입재 법석에서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이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정우 스님은

정우 스님은 1965년 출가해 1968년 통도사에서 홍법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71년 월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85년 서울의 강남에 통도사 포교당인 구룡사 산문을 연데 이어 일산에 여래사와 반야사를 조성, 신도시 포교의 장을 열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도 포교당을 열어 해외에 한국 불교를 홍포하는데 앞장서 왔다. 스님은 지난 5월 29일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로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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