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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잠’서 깨어나는 부처님

기자명 법보신문

김상현
동국대 교수

부처님도 졸음이 왔습니다. 잠시 눈 붙이고 일어나실 생각으로 잠들었습니다. 경주 남산 열암곡, 그 골짜기에 살짝 엎드린 채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졸듯이 그렇게 눈 붙였는데, 세월은 벌써 천 수백 년을 흘러갔다고 야단들입니다. 아직도 엎드린 채 부처님은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무게가 70톤이나 되는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려면 헬기를 동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구름을 타고 당나라를 오고갔다는 어느 고승의 도력에 대해서 들은 바 있어도 아직 비행기를 본 적이 없는 부처님에게 헬기라는 말은 낯 설기만 합니다. 또 문화재청장이라는 이가 말합니다. “이 부처님을 옆으로 뉘어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선잠을 깬 부처님은 아직도 졸리는데, 사람들이 몰려와서 구경하겠다니 은근히 걱정입니다.

어떤 교수는 말합니다. “오뚝하게 솟은 코는 약간 긴 듯한 느낌을 주며,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 있고, 입술은 도톰하고 부드럽다. 어깨는 넓고 가슴은 펴고 있어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통일신라 후반기의 좋은 작품이다.” 자신을 작품이라고 하니 약간 이상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잘 생겼다니 듣기에 싫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은 아직도 엎드린 채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석공이 열암곡의 돌을 쪼기 시작하던 8세기 후반, 그 시절의 신라 사람들을. 정성을 다하던 석공의 땀방울과 비원을 잊지 못합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조영했던 김대성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나라의 고승들까지도 500년 만에 출현하신 한 분의 성인이라고 찬양하던 용장사 태현 스님의 명성도 새겨 봅니다. 삼화령 미륵불에게 차를 공양하던 충담 스님, 그 스님이 찬양한 화랑 기파랑도 생각납니다. 아직도 엎드린 채 부처님은 살며시 미소 짓습니다. 그 시절은 행복했습니다.

경주 남산 열암곡의 부처님, 그 부처님은 지난 꿈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천 년 사직이 망한 뒤의 쓸쓸하던 경주, 그래도 사람들의 신심은 깊어 외롭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그 시절은 악몽이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금강산의 스님들이 양반의 가마를 메었다고도 하고, 어떤 절은 유생들이 불을 질렀다고도 했고, 어떤 철불상은 유생에게 팔을 잘리기도 했다는 그런 악몽이었습니다. 부처님을 가장 괴롭힌 악몽은 아이 낳기를 바라는 여인네들이 부처님의 코를 베어간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는 우상이라며 불상을 깨부수는 사람까지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년의 잠에서 깨어났지만 아직도 겁이 납니다. 부처님은 아직도 엎드린 채 풍문에 들려오는 세상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가짜 박사로 인해서 백년 전통의 학교가, 그리고 그 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는 불교가 크게 흔들린다는 소식에 부처님은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불교계에는 누적된 문제가 많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경주 남산 열암곡의 부처님은 이제 천 삼백 년의 잠에서 깨어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 사자후를 토할 것입니다. 한국 불교, 이제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고. 자비인 동시에 용맹이어야 한다고. 파사현정의 기치 높이 세우라고. 파괴가 곧 유신의 어머니라고 외치던 만해사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고. 그리고 한국 불교 긴 전통의 잠에서 깨어나 21세기 인류에 빛이 되기 위해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크게 변하고 또 변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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