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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의병 피하려 日 말사 등록”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7.10.22 14:16
  • 댓글 0

한동민 위원, ‘의병전쟁기 불교계’서 주장

의병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1907∼8년경 조선의 사찰들이 의병전쟁으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제에 보호를 요청하거나 일본 사찰의 말사로 등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동민〈사진〉 수원시사 전문위원이 10월 18일 한국선학회에서 발표한 논문 ‘의병전쟁기 불교계의 현실과 대응’은 의병전쟁으로 인한 불교계의 피해상, 그 이후 이어지는 불교사찰의 친일행각을 드러냄으로써 그동안 근대불교사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개항과 일제시대의 교차 지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07년 군대 해산이 강행되면서 전국의 유생들은 일제에 대한 의병봉기를 일으켰고, 한반도 전역은 일본군과의 전쟁터로 변모했다. 당시 의병과의 싸움이 주로 산간에서 이루어진 탓에 사찰은 전투의 한복판에서 숱한 피해를 입기 마련이었다.

사찰 의병 근거지로 활용

일제는 의병들의 근거지로 활용되는 사찰을 의병을 막는다는 이유로 방화했고, 당우를 잃은 스님들은 길거리로 나앉을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양주 상원사와 용문사가 소각됐고, 정산 정혜사, 청주 화양동 환장암 등이 전소됐다. 무학대사가 중창한 금강산 심원사 또한 “의병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방화되었고 불전 88칸, 요사 139칸, 초가 28칸이 불에 탔다.

일제, 사찰 당우 방화

한 전문위원은 “일본군의 방화로 인한 불교계의 피해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고, 일제는 의병들과의 전투과정에서 소실되었다거나 심지어 의병들에 의한 방화로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사찰들이 통감부 혹은 일본 사찰에 보호를 부탁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점이다. 일제는 1906년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발표하고 일본 사찰의 조선 사원 지배를 합법화시키는 관리청원 제도를 마련했다. 관리청원이란 한국의 사찰을 일본 종파의 말사로 편입시켜 통제와 보호를 받는 형식이다.

당시 많은 사찰들은 일본군들의 방화를 피하기 위해 일본 종파의 말사로 등록, 사찰을 보호하려는 방편을 취했다.

영변 보현사, 합천 해인사, 동래 범어사, 구례 화엄사, 서울 화계사, 봉국사 등 조선의 유수한 명산대찰이 일본 불교종파에 관리청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들 절들은 금강산이나 지리산, 가야산 등 의병운동이 활발하던 깊은 산골에 위치해있었다는 해명이 가능하지만 서울 인근의 화계사, 봉국사 등이 관리청원을 신청했다는 점은 사찰보호를 위한 자구책이라는 해명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대목이다.

한 전문위원은 “서울 인근의 사찰의 관리청원은 단지 외부적 강제에 의한 사찰보호라는 자구적 의도보다는 일본불교에 의한 보호를 매개로 다른 의도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즉 “1894년 지방 유지들의 사유재산 침탈과 1907년 의병전쟁에서 일본의 방화와 침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조선의 사찰들은 조선정부에 대한 불신, 특히 지방 관청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통감부 설치 이후 일본 종파 불교에 대하여 관리를 청원하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이러한 상황이 1911년 사찰령을 커다란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지경으로 불교계를 몰고갔다”고 지적했다.

친일로 휩쓸려간 계기

개항기와 일제시대의 불교는 역사학 전공자들에게 노다지밭으로 불리는 영역이다. 그만큼 많은 사료와 연구과제들이 산재돼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전공하는 학자나 연구논문이 극히 적은 적다.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종단이나 문중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부담감은 불교사학자들로 하여금 연구의 영역을 항일 쪽으로 편중되게 했다. 결국 일제시대 불교는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비추는 편향적인 연구가 되었다는 것이 근대사학자들의 비판이다. 다행히 2000년에 들어서면서 불교계의 친일을 다룬 연구 내지 친일이나 항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연구가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한 전문위원의 논문은 그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개항기 불교의 현황과 함께 일제시대 친일불교로 이어지는 단서를 밝혔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연구로 평가된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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