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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의 길

기자명 법보신문

이 기 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피어있는 가을 잎들의 아름다운 색조가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 뒤로 가을 하늘은 더욱 멀고 아득하게 보인다.

올 여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끝없이 비가 내렸고 가혹한 태풍이 왔고 더위 또한 극성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를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한다. 그중 겁탁(劫濁)은 외부의 환경적 요인이 탁해져 우리가 고통을 받는 것을 말한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폭염, 태풍, 홍수 등 각종 기상재해가 이런 것들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러한 고통들로부터 해방된 어떤 청정하고 아름다운 환경, 즉 정토(淨土)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토는 우주 어디에 있을까? 불교가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해탈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불교는 우리를 정토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는 아미타경에서 여기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아득히 먼 곳에 지극히 청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있다고 설하셨다. 또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에 정토왕생을 발원했거나, 현재에 발원하거나, 미래에 발원하면 그곳에 이미 왕생했거나, 현재 왕생하거나 미래에 왕생할 것이라고 설했다. 아주 단순한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지금 정토에 있지 않고 이 더러운 예토(穢土)에 살고 있을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정토왕생을 진실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예토가 좋아서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요즘 일부 스님들의 몰지각한 행태를 볼 때, 그들이 진정으로 이 더러운 예토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채동선 선생의 가곡에 ‘그리워’가 있다. 이 가곡에 붙인 이은상 선생의 시가 참으로 아름답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그리운 옛님은 아니뵈네…/들국화 애처롭고/갈꽃만 바람에 날리고/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우리는 왜 다시 이 고통스러운 오탁악세에 돌아왔나? 무엇이 그리워 찾아 왔을까? 와서 그리던 것을 찾았는가?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던 날 왜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이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까?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지나간 세월은 모두 부질없이 헤아리다 눈물과 웃음 속에 허망하게 흘러간 세월이 아닐까? 이 예토의 꿈같고 아지랑이 같이 허망한 것들 속에서 부질없이 헤아리다가 흘러간 것이 아닐까?

‘그대 가슴에 내가/내 가슴에 그대 있어/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아미타경에 정토를 그리워하고 아미타불만 가슴에 지니면 아미타불도 우리를 가슴에 지녀 우리가 정토에 왕생한다고 설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우리나라의 불자가 천 만 명이 넘는 다고 한다. 그런대 왜 이 추하고 부끄러운 예토의 일들이 끊임없이 불교 종단 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개탄스러운 일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불교는 이 땅위에 청정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정토를 구현하기 위한 여러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아직껏 예토에 살고 있을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길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석가모니는 아주 간명하게 그 길을 가리키셨다. 아미타불의 아름다운 극락정토를 그리워하고 그곳에 왕생을 진정으로 발원만 하면 정토가 바로 우리 앞에 구현된다고. 이제 정토를 진지하게 조명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여러 길속에서, 어렵고 힘든 여러 길속에서 진종일 고통스럽게 헤매다 외롭게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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