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통청 ⑭
삼보통청 ⑭
  • 법보신문
  • 승인 2007.11.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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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는 법계의 입장에서 차별이 없고
귀의하며 공양올리는 중생 자신의 모습

진언권공(眞言勸供)

향수나열 (香羞羅列)
재자건성 (齋者 虔誠)
욕구공양지주원
(欲求供養之周圓)
수장가지지변화
(須仗加持之變化)
앙유삼보 (仰惟 三寶)
특사가지 (特賜加持)
이처럼 향긋한 공양을 정성껏 차려놓았습니다. 부디 이 공양이 원만 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오니 삼보님께서는 공양을 변화 시키는 특별한 가지를 내리옵소서.
나무시방불 나무시방법 나무시방승.

무량위덕 (無量威德)
자재광명 (自在光明)
승묘력 변식진언
(勝妙力 變食 眞言)
무량한 위덕과 자재한 광명과 뛰어난 묘력으로 음식을 변화 시키는 진언.
〈나막 살바다타아다 바로기데 옴 삼바라 삼바라 훔〉

법계를 근본으로 하는 삼보는 그 수효가 한량이 없다.

일체 세계는 부처의 몸이 되고 일체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 법이 되며 이 가운데에서 생을 살아가는 일체의 생명들은 승이 된다. 법계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삼보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

혜가선사가 제자 승찬 스님에게 ‘부처와 법이 둘이 아니니 승 또한 그러하니라’ 고 한 말씀처럼 불과 법과 승은 동체이다.

이를 달리 말 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며 중생이 곧 세계라는 의미로 불 법 승 삼보는 현재 여기를 떠나 있지 않고 귀의하며 공양을 올리는 중생 자신의 모습과 함께 한다.

만법의 근본 이치를 환히 깨달으신 부처님의 눈에서 보면 부처와 중생과 세계는 평등하여 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식문에 나오는 공양의 의미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 하게 된다.

그것은 한량없는 삼보에게 공양을 바치려면 그에 따른 공양물의 양도 한량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삼보의 수효에 따라 공양의 양도 준비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불단위에 차려 놓은 공양의 양으로는 법계의 한량 없는 삼보에게 공양 올리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공양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불단위에 차려진 작은 양의 공양물을 가지고도 모든 법계의 한량없는 삼보에게 빠짐 없이 공양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진언 권공은 갖가지의 진언으로써 공양의 양과 질을 변화 시키고 모든 삼보로 하여금 공양을 충족시키려는 발원이 깃들여져 있다.

공양을 올리는 주체인 재자는 자신이 바친 공양물이 부처님의 신묘한 가지력에 의해 일체를 충족 시킬 수 있는 공양물로 변화 될 것을 깊이 바라면서 변식 진언을 암송한다.

가지력이란 불보살이 중생에게 내려주는 불가사의한 힘으로 가피력의 다른 말이다.

유마경에서 유마거사는 가섭 존자에게 ‘한 그릇의 밥으로도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며 모든 중생을 공양할 수 있어야 응공의 자격이 있다고 설법하였다.

삼보에게 물 한 방울을 바치면 삼보는 그 물을 시주자의 발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발원과 정성의 정도에 맞추어 한 방울의 물이 법계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최상의 공양물일 수도 있고 최상의 공양물이 아무런 공덕도 없는 물 한 방울이 될 수도 있다.

공양은 어떤 공양을 얼마만큼 올리느냐 보다는 어떠한 신심과 발원으로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작은 것을 크게 만드는 것도 큰 것을 작 게 만드는 것도 모두가 마음에 따라서이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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