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8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18
  • 법보신문
  • 승인 2007.11.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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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핵심 가르침은 ‘깨달은 후 중생에 회향’

『대승기신론』에 대하여 무려 7종의 연구저서를 낼 정도로 이 논서에 심취했던 원효는 『기신론』의 성격을 다음의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첫째, 『기신론』은 인간의 마음이 원래 청정한 것임을 강조하는 중관학파와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현실적으로는 깨닫지 못하여 물든 상태에 있으며 이를 분석, 관찰하는 데 주력하는 유가학파, 이 두 학파의 주장을 지양·종합한 논서임을 주장한다.

원효, “기신론은 삼세·아라야식설”

실제로 『기신론』은 일심, 즉 중생심에는 마음의 자성청정을 밝히는 심진여문과 현실의 물든 마음을 긍정하고 이를 분석하여 종국에는 청정심을 얻을 수 있다는 심생멸문의 두 가지 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일심이문의 구조는 『기신론』 전체의 대전제로 설정되어 있으며, 『기신론』이 중관·유가학파의 지양·종합으로 나타난 논서라는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둘째, 원효는 위의 중관·유가(유식)학파의 지양·종합이라는 성격을 더욱 드러내는 구체적인 전개로서 『기신론』이 삼세·아라야식설임을 주장한다.

이 삼세·아라야식설은 아라야식이 각의(覺義)와 불각의(不覺義)의 이의(二義)를 가진 진망화합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설득력이 있다.

삼세란 자성청정의 진여심에 무명이 훈습하여 최초에 동요하기 시작하려고 하는 무명업상, 동요하는 맨 처음의 증상으로서 상대를 바라보고 있는 전상, 그리고 바라보는 상대(境界)에 비춰지는 현상의 매우 미세한 의식을 말한다.

아라야식은 오늘날의 무의식에 해당하는 심층의식으로서 우리의 물든 의식으로의 전개에 최초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이 전개된 염오심이 다시 청정심으로 환멸코자 할 때, 마지막 귀결처가 되는 곳이 또한 이 아라야식이다.

원효는 삼세가 바로 아라야식임을 창설하는데, 이 주장은 당(唐)의 법장이 그대로 수용한 바 있다.

아라야식이 바로 삼세라는 주장은 『기신론』 본문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기신론』의 내용 중에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것임은 이미 필자가 논문으로 입증한 바 있다.

『기신론』 출현 이전의 유식학파에서 아라야식을 막연한 잠재심 내지 진실치 못한 망식으로 주장한데 비해서 이 삼세아라야식설에서는 아라야식이 진망화합식 즉 청정심과 염오심이 화합된 심층의식으로서 수행에 의해 삼세의 망식 부분을 제거하면 바로 삼세 자체에 청정식 부분만 남게 되어 이가 곧 깨달음의 심원(心源)에 이르는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아라야식을 막연한 잠재심으로 설정한 유식학파와는 달리 삼세라는 구체적인 수행단계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불사의업상이 곧 이타행

셋째, 수행에 의해 삼세에서 염오심을 제거하여 청정심에 이르게 되면 지정상(智淨相)과 불사의업상(不思議業相)이라는 두 가지 모습이 나타난다.

지정상이란 모든 염오한 마음이 제거되어 지혜가 순정하게 된 것, 즉 무분별심(根本智)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무분별심에는 또한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일반 범부가 사량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공덕상을 끊임없이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불사의업상이 있다.

원효는 지정상이란 자신이익을 성취하는 것으로 해탈한 뒤에 번뇌장과 소지장의 두 번뇌를 모두 멀리 여의어 아무런 장애가 없는 청정법신을 얻은 경지이며, 불사의업상이란 타신이익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미 자신이익을 성취하였으면 자연히 세간에 자재한 위력과 행위를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라 한다.

즉 지정상과 불사의업상은 자리행과 이타행에 다름 아니다.

한편 『기신론』에서는 수행심신분의 지관문을 설명할 때, 지(止)를 닦으면 범부가 세간에 집착함을 대치하고 관(觀)을 닦으면 이승이 대비를 일으키지 않는 협열심을 대치할 수 있다고 하며, 이 지관 이문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보리(菩提)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위에서의 지정상은 지문에, 불사의업상은 관문에, 나아가 지정상은 심진여문에, 불사의업상은 심생멸문에 배대시킬 수 있다.

원효는 진여문에 의해 지행을 닦음으로써 세간에의 집착을 벗어나 무분별지를 얻으며(自利行), 생멸문에 의해 관행을 닦음으로써 대비심을 일으켜 후득지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지·관 이문 갖춰야 보리에 들 수 있다

깨달음을 얻은 이가 깨친 자리에서 홀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이익을 위하여 중생에게 회향하는 이타행, 즉 부주열반 사상이야말로 원효가 그의 수많은 저술들에서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으로 이는 석가 이후 원효에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은정희 전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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