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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움켜쥐고 실천의 길로 떠나라

기자명 법보신문

정토회 지도법사 법 륜 스님

오늘 하루 즐거웠습니까? 저도 즐거웠습니다. 어르신 150명을 모시고 표충사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이라서 단풍도 좋고 경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말씀이 단풍은 예쁘지만 늙는 것은 싫다고 합니다. 봄에 새싹이 나면 새싹도 예쁘지요. 꽃이 피면 꽃도 예쁘고. 여름에 잎이 무성하면 그것 또한 예쁩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더욱 예쁜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려서, 청년은 청년이라서, 장년은 장년이라 좋고 노인은 노인이라서 좋은 것입니다. 늙는 것이 슬프거나 후회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저 단풍처럼 예쁘게 늙으시길 바랍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

오늘날 한국불교의 주류는 대한불교조계종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인 동시에 대승입니다. 그리고 불교로서의 종지는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왜 깨달으면 일체 고에서 벗어납니까. 어떻게 벗어나야 됩니까.

경전의 내용을 빌어서 말씀 드리면, 어떤 사람이 황야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성난 코끼리가 나타나서 공격을 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도망을 가다 웅덩이가 나타납니다. 살았다 싶어서 풀쩍 뛰어내립니다. 그런데 밑에 큰 코브라가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정신이 아찔해서 보니까 옆에 칡넝쿨이 있어서 움켜쥐고는 벽에 기대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사방의 벽에서 뱀이 입을 벌리고 덤벼듭니다. 발을 댈 수가 없어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쥐가 나타나더니 칡넝쿨을 갉아 먹습니다.

기어 올라가면 코끼리가, 내려가면 코브라가, 벽에 붙으면 뱀이, 가만히 있으면 쥐가 끊어버리는 것이지요. 그 때 그 위에 마침 벌집이 하나있어서 꿀이 한 방울 혀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 달콤한 꿀맛에 처해있는 상황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럴 때 다른 종교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저 코끼리를 없애 주십시오, 코브라를 없애 주십시오. 어떤 힘을 빌려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데 눈을 딱 떠보니 꿈입니다. 이것이 불교이고 깨달음입니다. 설상가상인 인생살이 가운데서도 눈을 뜨면 지혜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말을 쓰고 이것이 가르침의 특징이기 때문에 불교라고 합니다.

어떤 보살님께서 술 마시는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술을 먹으면 내가 괴롭고 남편이 술을 안 먹어야 내가 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법에 귀의하면 간단하게 끝나는 문제입니다. 오늘부터 108배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시면 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우리 남편 술 많이 먹게 해주십시오.” 자, 부처님께 “우리 남편 술 많이 먹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니까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도가 성취되었죠? 남편이 술 먹는 게 괴로움의 원인이 아닙니다. 술을 먹는 것은 교리적으로 말하면 공(空)입니다. 괴로운 일도 즐거운 일도 아닙니다. 즉, 제법은 공한데 내가 한 생각을 일으켜서 먹지 말라고 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배고픈 쥐가 접시에 담긴 음식을 발견하고 웬 떡이냐며 마구 먹었습니다. 한참 있다가 배가 너무 아파서 떼굴떼굴 구릅니다. 쥐약입니다. 여기서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쥐가 왜 쥐약을 먹었겠습니까? 쥐약인 줄 몰라서입니다. 모르는 것은 무지, 무명입니다. 맛있는 음식인 줄 잘 못 알았다는 것은 전도몽상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무명, 무지, 전도몽상에서 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쥐약이라는 사실을 알면 안 먹습니다. 그것이 무명을 깨뜨리는 지혜입니다. 전도몽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원리 전도몽상이고, 전도몽상에서 멀리 떠나는 것은 구경열반입니다.

생각에 집착해 괴로운 것

우리는 불자인 동시에 대승이기 때문에 꿈 깨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선후로 보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자리인 동시에 이타입니다. 여기 꽃을 보십시오. 꽃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면 내가 기분이 좋죠. 그런데 내가 기분이 좋은 동시에 꽃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남을 사랑하면 내가 이익입니다. 저사람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고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답답합니다. 그런데 남을 이해하면 내가 행복해집니다.

대승은 일체중생에게 베풀되 베푼 바가 없습니다. 복을 짓지만 복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을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남편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훌륭한 사람과 사는 내가 행복합니다. 설령 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훌륭한데 내가 성격이 못나서 헤어졌습니다.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마음을 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을 알면 자기 인생의 길이 열리고 가정이 화합되고 세상에 필요한 유용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자기가 선 자리에서 보살행을 하는 것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입니다. 오가칠종 가운데 임제종입니다. 임제종의 수행방법이 바로 화두선입니다. 어떤 스님이 선방에서 좌선을 하는데 뭐가 자꾸 달그락 소리가 납니다. 보니까 강아지 한 마리가 마른 뼈다귀를 물었다 뱉었다 하고 있습니다. 마른 뼈다귀를 물고 있다는 것은 아무 이득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 있는 자리에서 보살행

그런데 문득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열반경』에 일체 중생은 다 불성이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개도 부처입니다. 그러면 마른 뼈다귀 씹는 것이 부처의 행위이냐, 그것은 아니지요. 쓸데없는 짓이라면 개는 중생입니다. 불성이 없습니다. 그러면 일체중생이 불성이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까. 거기에서 딱 의심이 생깁니다. 구체적인 개의 행동을 보자마자 의문이 든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에게 가서 질문을 합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스승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듣자 이 수행자가 눈앞이 멀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깜깜한 절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화두입니다. 열반경에서는 있다고 하고 스님은 없다고 하고. 부처님의 말씀도 100% 믿고 스승의 말씀도 100% 믿는다고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무(無)라는 말에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어진 것입니다. 잠들어도 꿈에서도 화두입니다. 놓을래야 놓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화두가 잡혀야 깜깜절벽이 됩니다. 거기에서 백척간두 진일보, 한 발 더 가야 됩니다. 차고 나가면 그대로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마치 어두운 방안에서 불을 딱 켠 것처럼 마음이 고요해 지는 것입니다. 이게 선입니다.

이런 위에 사회 활동이 있습니다. 인도에 가서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병든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하며, 어린 아이는 제 때 배워야 한다.”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최후 유언에서 나왔습니다.

굶고 병든 이 보살펴야 불자

아난존자가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나면 누구에게 공양을 올려야 합니까?”라고 질문하자 여래께서 말씀하시길,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과 똑 같은 공덕이 네 가지 있느니라.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줘서 배부르게 하고, 둘째, 병든 이에게 약을 줘서 치료하고 셋째, 가난하고 외로운 자를 돕고 위로하고 넷째, 청정한 수행자를 잘 외호하는 것은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는 공덕과 같다.”

경전의 아이디어에 대한 실천은 오늘날 인류 사회에서 가장 첨단에 속합니다. 그래서 저는 붓다가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2500년 전에 이렇게 훌륭한 말씀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위대한 스승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아침마다 예불 올릴 때 시아본사라고 합니다. 이분이야 말로 본래 스승이시다. 이분께 귀의하고 이분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이분을 따르는 위대한 스승들께 귀의한다. 이것이 삼귀의입니다. 이 귀의를 기초로 해서 다른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선정을 닦고 지혜를 증득하겠다. 이것이 삼보에 귀의하고 계정혜 삼학을 수지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지를 움켜쥐시고 그런 기초 위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실천하길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부산광역시불교신도회(회장 공병수)가 11월 5일 부산불교신도회관에서 주최한 ‘도심 포교 성공 신화 릴레이 초청대법회’ 네 번째 법석에서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이 ‘정토 행자의 발원과 실천’을 주제로 법문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법륜 스님은

1969년 경주 분황사에서 도문 스님께 입문한 법륜 스님은 1988년 1월 정토포교원을 개원하고 월간 「정토」 발행을 시작하며 불교계의 대표적 NGO-신행단체인 정토회를 설립, 현재 전국에 7개의 지부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서울 대성사에서 도문 스님으로부터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한 스님은 JTS와 좋은벗들 등 민간 구호 단체를 통해 해외 빈민구제사업과 대북 지원 사업 등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구호 및 봉사활동을 펼친 스님은 그 활동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북한의 대량 아사를 막기 위한 옥수수 긴급지원운동을 펼쳤으며 빈그릇 운동 등 친환경 캠페인도 전개해 주목 받아 온 스님은 최근 백용성조사 탄생성지인 장수 죽림정사에서 은사인 도문 스님의 뒤를 이어 2대 주지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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