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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의 명암(明暗)

기자명 법보신문

[법보시론] 대전 자광사 주지

정말 그랬다. 수유리 사거리 교통표지판에서 화계사의 영문이름이 또렷이 보일 때 가슴이 두근거리며 마치 인생의 긴 방황 끝에 찾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듯 잔잔한 흥분과 함께 마음 속 깊은 안도의 기쁨과 과거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 뒤섞여 화계사로 향하였다.

화계사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이러하였다. 그들은 멀리 유럽이나 미주지역,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찾아오는 벽안(碧眼)의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에게 화계사는 한국에 있는 하나의 불교사원이 아니라 전 세계의 유일한 정신적 고향이자 귀의처였다.

화계사는 서울에 있는 여느 사찰처럼 산자락 끝에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는 평범한 사찰이다. 수려한 계곡이 받드는 것도 아니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져 있는 것도 아니며 평화롭게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나 숲이 수 십 만평 펼쳐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잘 가꾸어진 연못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도량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험 있는 마애불이나 석굴암과 같은 부처님이 모셔진 것도 아니며 혹은 해인사의 고려대장경과 같은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화계사는 이 모든 것을 갖춘 도량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도량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숭산 스님이셨다.

숭산 스님은 한국불교의 진수를 통하여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이루셨다. 불교의 진미를 세계 곳곳에 전하시고자 평생을 한결같이 발로써 몸소 실천하셨다. 숭산 스님은 세계일화의 화신이자 법신이셨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수행자들을 화계사로 찾아들게 만든 것이 바로 스님이셨다. 스님께서 입적하신지 문득 삼년이 되었다. 그리고 스님의 원적 3주기를 맞이하여 30여 국가에서 120여 수행도량에서 수행하던 외국인 제자들이 먼 길을 마다하고 다시 화계사를 찾아 스승을 추모하며 스승의 은혜와 가르침을 기리니 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지 않는가.

돌이켜보면 숭산 스님은 송광사의 구산스님 그리고 국제연등회관의 원명스님과 더불어 현대한국 불교사에서 빛나는 국제포교의 선구자이셨다. 송광사에서 한때 300여명의 외국인제자들을 제접하신 구산스님의 원력은 스님의 입적이후에 더욱 활발하게 이어가지 못하고 지금에서는 송광사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으며, 한때 한국을 찾는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사랑채 역할을 하였던 종로의 국제연등회관은 원명스님의 입적이후에는 서울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불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뜻있는 불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이제 그 시선은 화계사로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숭산 스님의 경우는 구산스님과 원명스님의 경우와 달리 공주에 무상사도 있고 전 세계에 120여개의 수행선원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화계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량이다. 즉 그들의 스승이 입적하실 때까지 주석하시면서 수행을 지도하셨던 그들의 정신적인 중심도량이다.

이제 숭산 스님의 원적 3주기를 맞이하면서 화계사가 송광사의 전적을 밟아 서울에 있는 여느 일개 사찰로 전락할지 아니면 전 세계인에게 한국불교의 살아있는 수행순례지가 될지는 우리 불자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불교에 귀의하여 출가입산한 조계종 승적을 취득한 외국인 스님들에게 비자발급 및 연장문제, 의료보험문제, 한국어교육문제 등 현실적으로 매우 화급한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까지 자신들이 해결하면서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배우고 익히고 있는 그들에게 화계사를 ‘특별외국인도량’으로 지정하여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어떠한가.

현재 유일하게 ‘특별수행도량’으로 지정된 문경 봉암사처럼 외부에서 임명된 주지 없이 화계사도 조계종단 소속의 외국인스님들이 자체적으로 운영 관리하면서 수행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떻겠는가. 수 만개의 한국 내 불교사찰 중의 하나, 수천 개의 조계종단의 공찰 중 하나, 수백 개의 수도권 공찰 중 하나, 수십 개의 강북구 공찰 중의 하나를 외국인스님들에게 사용을 허락하는 아량이 우리들에게는 진정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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