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통청 16.
삼보통청 16.
  • 법보신문
  • 승인 2007.11.2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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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 차원에서 중생과 삼보는 차별 없어

다함께 평등…‘감응-가피’는 모두 허언

지심정례공양 삼계 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至心頂禮供養三界導師四 生慈父是我本師釋迦牟尼佛) /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至心頂禮供養十方三世帝網刹海常主一體達磨耶衆) / 지심정례공양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 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至心頂禮供養 大智文殊舍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地藏菩薩 摩阿薩) / 지심정례공양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내지 천이백 제대 아라한무량자비성중 (至心頂禮供養靈山當時受佛咐囑十代弟子十六聖五百聖獨修聖乃至千二百第大阿羅漢無量慈悲聖衆) / 지심정례공양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종사 일체 미진수 제대 선지식(至心頂禮供養西乾東進及我海東歷代傳燈第大祖師天下宗師一體微塵數諸大善知識) / 지심정례공양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 일체 승가야중(至心頂禮供養十方三世帝網刹海常住一切僧伽耶衆)

앞서 중생은 애욕으로 음식을 먹고 감촉을 먹고 의도를 먹고 의식을 먹는 것으로 몸과 마음을 기르지만 부처님은 선의 기쁨을 먹는 것으로 몸과 마음으로부터 해탈을 이룬다고 밝힌 바 있다. 중생이 저 네 종류의 먹을거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 가진 만큼 번뇌는 증장한다. 따라서 중생이 번뇌를 버리려면 먹을거리에 대한 탐욕을 줄이고 수행에 힘써야한다. 엄밀히 말해 대승에서 말하는 부처님을 비롯한 삼보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과 삼보는 중생이 음식을 바친다 하여도 그 음식을 드시지는 않는다.

부처님을 영적 존재나 신적 존재 혹은 개체적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은 불상에 어떤 신비적 존재가 실려 있다가 불단위에 차려진 음식을 드실 거라고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과 삼보는 이러한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과 삼보는 신비적 존재도 아니고 중생위에 군림하면서 중생들에게 길흉화복을 내려주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생의 삼보를 향한 믿음과 발원 그리고 공양의식은 의미가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삼보의 감응은 절대 헛됨이 없으며 어긋남이 없다. 중생이 살고 있는 법계는 인과응보가 분명한 연기의 세계이다. 본문에 제망찰해라고 표현한 부분이 이 뜻을 안고 있다. 이 세계는 중생의 마음을 따라 연기한 일심법계이다. 즉 중생의 한마음의 차원에 따라 일어나고 이에 반응을 하는 것이 이 세계라는 것이다.

중생이 선을 생각하면 이 세계도 선으로 나타나고 중생이 악을 생각하면 이 세계도 악으로 나타난다. 이는 삼보에 있어서도 마찬 가지이다. 만약 중생이 삼보를 생각하면 이 세계는 삼보로 나타난다. 그리고 중생이 삼보를 우러러 공양을 올리는 마음을 지니면 법계는 중생의 마음에 응하여 공양을 받는 대상이 된다. 여기서 주목 해야 할 점은 공양을 올리는 중생과 공양을 받는 삼보와의 관계는 법계의 이치를 바로 깨치지 못한 범부 중생의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정작 법계 자체의 차원에서는 중생과 삼보와의 차별은 없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근거하면 머리를 숙이는 중생과 공경을 받는 삼보는 다함께 평등하여 감응이니 가피니 하는 말은 모두 허언이 된다. 문제는 중생의 미혹이다. 미혹하므로 자신과 삼보가 갈라지고 목숨 까지 바칠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을 바쳐야만 하는 중생이 되었다.
위 문장 은 모든 불자가 공양 때만 되면 외우는 칠정례라고 하는 예참문이다. 불자가 부처님께 음식을 바치면 그 음식은 음식의 틀을 벗어나 법으로 회향 되어 음식을 올린 불자 자신에게 돌아온다. 

유마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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