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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꽃’ 선거의 한계

기자명 법보신문

손혁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손 혁 재

경기대 정치교육원장

선거를 치르고 나면 가장 많이 나오는 평가 가운데 ‘뜻밖의 결과’라는 표현이다. 5년 전 16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후보가 되었을 때도,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대세론’을 꺾고 당선되었을 때도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뜻밖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뜻밖의 결과’라는 평가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정확한 표현은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이 틀렸다’가 되어야 한다. 왜 선거 때마다 번번이 전문가들의 예측, 언론의 전망이 틀릴까? 우리나라 선거가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데다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선거는 유형을 나누기가 쉽지 않고 선거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뜨거운 무대, 차가운 객석’이다. 후보와 정당들은 지나치게 뜨거웠지만 정작 유권자인 국민들은 매우 차가웠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2년도 넘게 국민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려왔기 때문에 결과가 뻔해서였을까? 16대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가 5년 내내 압도적 선두를 달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심을 얻지 못해서 반노무현 정서가 너무 심해서일까? 16대 대선 때도 김대중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서가 심했다. 오죽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염원하던 노벨상을 김 대통령이 받았는데도 많은 국민들이 시큰둥했을까.

선거는 국민의 자유의지에 따라 대표를 뽑는 행위이다. 선거는 민주주의 원리에 기초를 두는 유권자의 합리적인 의사표현 수단이다. 선거는 대표자를 국민합의로 임명하는 행위인 동시에 국민이 민의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또 정치적 자유를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민주정치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져야 한다.

그러나 선거제도가 정말로 국민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느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라이커(W. H. Riker)는 투표절차가 절차적 공정성을 갖더라도 투표자의 선호와 관계없는 자의적인 결과를 나타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선거는 국민의사를 대변하는 데 실패하고 제한적인 대의민주주의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콜만(J. Coleman)과 피어존(J. Ferejohn)도 선거는 나쁜 독재자를 거부할 수 있는 기회일 뿐이라고 본다. 슘페터(J. Schumpeter)는 국민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 피쪼르노(A. Pizzorno)는 개인들의 의사결정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들어 선거의 합리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한국영화는 820만 명이 본 심형래 감독의 ‘디 워’이다. 그러나 ‘디 워’가 가장 뛰어난 영화는 아니다. ‘디 워’는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시각효과상을 받는데 그쳤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밀양’이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받아 올해 최고의 영화로 인정받았다. 이렇듯 관객의 눈과 전문가들의 눈은 다르다. 좋은 책이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아니고 가장 관객이 많이 선택한 영화가 가장 좋은 영화인 것도 아니다. 이런 현상은 정치와 선거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좋은 정치인이 선거에서 늘 이기는 것은 아니다. 최다득표자가 가장 좋은 후보인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가 가장 좋은 후보를 선출하지 못하는 까닭은 선거가 이성의 제도가 아니라 감성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므로 합리적 선택을 할 것 같지만 비합리적 선택이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공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진 후보가 선출되기보다는 유권자를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후보가 선출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좋은 후보라는 이미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좋은 후보’를 선택하는 국민이 많으면 선거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고 ‘좋은 후보라는 이미지’를 선택하는 국민이 많으면 선거는 라이커나 피쪼르노의 주장을 증명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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