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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 다리됐던 스님들

기자명 법보신문

김상현 동국대 교수

국가 권력에 의한 불교 탄압이 자행되던 조선 초기 그 험한 시절에도 말없이 자비행을 실천하는 승려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자비승 혹은 선심승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우물을 파기도 했고, 다리를 놓고 길을 수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원(院)을 세우고 목욕탕을 지었으며, 기와를 구웠다.

세종 4년(1422) 1월 조정에서는 도성의 네 곳에 구료소를 설치, 축성역으로 병들고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게 했는데, 탄선(坦宣)은 승려 300명을 인솔하여 구료했다. 그는 염병도 두려워하지 않고 성심껏 환자를 돌 본 적이 있어서 한성으로 불려왔었다. 이해 9월에도 저자거리에서 걸식하는 굶주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왕은 흥복사에 구료소를 설치하여 죽을 쑤어 주도록 했는데, 조정에서는 탄선에게 그 일을 맡겼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보전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

승려 명호는 목욕탕을 지어서 병자를 돌보고자 하여 세종 5년(1423)에 조정의 허락을 얻었다. 한증욕은 병을 치료하는 한 방법이었기에.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에 그가 죽자 한증승 천우와 을유 등이 그 뜻을 이어 욕실을 증설했다.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별도의 보(寶)까지 만들어서 가난한 환자를 돕기도 했다.

조선 초 한성 거리를 누비고 다니던 승려 장원심(長願心)은 아이들도 그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는 익살스럽고 사심도 사욕도 없었다. 태종 6년 윤7월 6일자의 실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장원심은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을 보면 밥을 빌어다 먹이고 옷을 벗어 주었고, 병든 사람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 구휼했다. 가족이 없는 시체는 손수 묻어주고, 도로와 교량을 수리하는 등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이 때문에 마을 아이들도 그의 이름을 알았다.”

기와 굽는 승려를 와장승이라고 했는데, 와장승 해선(海宣)은 새로 건설한 한양 민가의 초가지붕을 기와로 바꾸는 일에 앞장섰다. 태종 6년(1406)에 해선은 조정에 건의하여 별와요를 설치했고, 200여 명의 승려를 모아 기와를 만들기 몇 년 만에 도성 민가의 반 이상이 기와를 올릴 수 있었다. 이로써 서울 한양의 화재를 예방하고 왕경의 품격을 높였다.

선심승 중에는 원(院)을 설치·운영하는 선심승도 있었다. 원이란 여행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교통의 요충인데도 산이 깊어 날이 저물어도 쉴 곳이 없고, 짐승이나 도둑떼가 나타나는 험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 원을 세워 오고가는 길손의 숙식을 무료로 제공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안전을 지켜주었다.

조선후기에도 선심승은 여전히 있었다. 18세기 초, 직지사에는 성항(性沆)이라는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머리가 희고 눈썹이 긴 노승이었다. 사재를 털어 곡식을 모으고 죽을 쑤어서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한 일이 있다. 그를 만나본 남구만은 한 수 시를 지어서 그의 법력을 찬송했고, “우리네 관리들은 도리어 그대에게 부끄럽다.”고 얼굴을 붉혔다.

물론 지금도 선심승은 많다. 불교계가 온통 문제가 있는 양 언론이 떠들 때도 묵묵히 복지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그러기에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자비승은 지금도 많다.

어려운 여건에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정진하는 스님들이야말로 험한 세상의 다리이자 보살이다. 경전의 말씀처럼 보살은 다리나 배와 같은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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