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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상생(龍蛇相生)의 전통

기자명 법보신문

청아 스님 대전 자광사 주지

용과 뱀이 함께 어울려 사는 도량, 이것이 한국불교의 역동성을 간직한 도량의 참모습이다. 용이 되고자하는 뱀은 끊임없이 자신의 허물을 벗으면서 이무기로 변화하고 이무기는 인욕과 인고로 이윽고 용이 되는 것이다. 용은 뱀과 섞여서 몸을 숨기면서 용트림을 기다리며, 여의주를 득하여 품어 굴릴 줄 알아야 하고, 여의주를 갖춘 용은 승천하여 천지의 왕래에 그리고 용사의 왕래에 간격이 없어 자유자재하여야 한다. 그래서 용이 곧 뱀이고 뱀이 곧 용인 용사불이가 성립되고 따라서 용사상생은 당연한 귀결이 되는 것이다.

근대 한국불교에서 꺼져가던 선풍을 중흥시키고 제방의 여러 선원들을 설립하고 납자들을 지도하던 경허 스님, 오대산 상원사에서 올곧은 종풍을 정립하고 조계종 초대종정으로 추대 받은 한암 스님, 그리고 스승의 지도하에 출가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으면서도 상원사 큰방에서 구참납자들에게 강의한 탄허 스님. 이들은 모두 용의 무리들이었다. 어찌 이들뿐이겠는가. 이러한 용의 무리들은 세납과 승납에 상관없이 제방 선원의 조실로서 추대되어 납자들을 지도하였다. 한암 스님은 29세에 통도사 내원선원의 조실로, 탄허 스님은 24세에 상원사에서 강의하였다. 이러한 용사상생의 전통이 뚜렷이 이어져온 것이 분명 반세기 이전의 일이었다.

지금의 한국불교는 어떠한가. 제방의 선원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지만 20대의 조실은커녕 20대에 출가하는 사람조차 귀한 형국이 되어버렸다. 40대 조실이나 선원장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30대의 조실은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고 있다. 대사찰일수록 조실들의 나이가 많아지고 있으며 세납이나 승납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가는 추세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선종을 자처하는 조계종은 나이만 따지는 노인종이라 아니할 수 없으리라. 세속에서도 30대나 가끔 20대의 CEO를 흔치않게 볼 수 있으며, 40대의 대통령이나 수상들을 볼 수 있는 시절이 되었는데 오히려 한국불교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던 전통을 지키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버리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용사상생의 전통은 용을 꿈꾸는 뱀들에 의하여 유지되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29세의 한암 스님을 조실로 추대한 그들은 모두 29세 미만의 스님들이 아니었고, 24세의 탄허 스님에게서 강의를 듣던 상원사 청량선원의 스님들은 모두 24세 이하의 젊은 스님들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오로지 용을 꿈꾸는 용의 기틀을 품은 뱀들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용미(龍尾)보다 사두(蛇頭)가 좋다며 서로 무리를 지어 사두를 꿈꾸는 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곳곳에 세납과 승납으로 제한하는 법률들을 규정하였고 용사평등과 민주주의를 주장하여 1인1표의 세속적인 정신을 수용하여 무리의 이익을 지켜나가고 있다.

용을 꿈꾸며 자신의 허물을 끊임없이 벗는 노력을 하지 않는 뱀들은 용과 함께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용을 배척하는 특징이 있다. 또한 이들은 서로 무리를 지어 천(天)보다는 지(地)를 지향하는 특징이 있다. 용을 배척하여 용이 함께 살 수 없는 도량, 심지어 용을 꿈꾸는 뱀조차도 함께 살 수 없는 도량 이러한 도량에서는 부처가 있으나 부처가 없고 법이 있으나 법이 없어 말 그대로 뱀소굴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도량은 뱀이 용이 되고, 중생이 부처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용사상생하고 불생공생(佛生共生)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묵은 터에서는 큰 중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어느 노스님처럼 처처에 골골에 이름 없는 암자와 토굴에서 불조의 용트림을 궁구하는 공부인이 우리의 희망이고 자랑이다. 노지에서 스스로 도량을 만들어 가꾸고 힘들게 의식주를 해결하면서 동안거를 나고 있는 그들은 분명 용의 기틀을 품었으리라. 봄이 오면 그들은 일제히 용트림하여 천지인을 바로 세우는 법을 펼쳐 세상을 평정하리라. 용은 반드시 용을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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