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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율장에 담긴 의미

기자명 법보신문

과거·현재·미래 소통시키는 역서
율장 이해 삶의 지혜로 승화시켜야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헬릿 카(E. H. Carr, 1892∼1982)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한 말이다. 이 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명확한 시간적 구분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연속적인 과정 속에서 돌고 도는 것임을 암시한다. 즉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역사라는 뜻이다. 한편, 이 생각의 바탕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어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문명의 발달 등으로 인한 생활상의 차이는 크다 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삶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로 눈을 돌려 선인들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극복을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불교경전 가운데도 과거로의 건설적인 여행을 도와주는 훌륭한 역사서가 있다. 바로 율장(律藏)이다. 율장은 출가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모아놓은 일종의 법률서적인 성격을 지니는 특수한 문헌이다. 이런 내용상의 특수성, 그리고 전문용어의 난해함 때문에 율장은 다른 불교문헌에 비해 불교학계에서도 연구가 늦어졌고, 재가불자들에게도 그 내용이 알려질 기회는 적었다.

그러나 근년 율장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이 문헌이 교단의 역사를 해명하는 최적의 자료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교리를 다룬 문헌들과는 달리, 율장은 출가자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율장보다 더 진솔하게 전해주는 경전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율장은 굳이 비유하자면 신문과 같다. 온갖 사건 사고로 뒤덮여 인간 세상의 좋은 면, 나쁜 면을 모두 다 보여주는 신문처럼, 율장은 승가공동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율장은 사건보고 수준에서 끝나는 신문과는 달리, 부처님께서 각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두 번 다시 똑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새로운 율 조목을 제정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는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는 출가자가 나타날 때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율 조목을 제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인연담과 율 조목을 모아 놓은 것이 바로 율장이다. 여기에는 출가자로서, 아니 출가자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갖가지 번뇌와 욕망에 휩싸여 방황하는 이들을 다듬고 다듬어 한 명의 훌륭한 인격체로 거듭나게 하고자 하는 부처님의 고뇌가 듬뿍 배어있다.

한국의 불교계에서는 율장을 금서(禁書)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마도 율장의 인연담에 등장하는 내용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기 때문에 이를 읽은 재가불자가 신심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말 아쉬운 현상이다. 이런 선입견 때문에 율장의 보석과도 같은 가르침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묻히고 있다. 율장에는 한 인간으로서, 그러나 깨달음이라는 위대한 목표를 안고 정진하는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거치게 되는 온갖 시행착오가 진솔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이를 올바르게 극복해 가는 삶의 지혜가 녹아있다. 율장은 현대의 우리들이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반드시 돌아보아야 할 선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서인 것이다.

올 한해 필자의 이 글이 율장은 딱딱한 법률서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없애고, 율장 속에 나타난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지혜로 승화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도쿄대 박사 jar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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