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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②

기자명 법보신문

초연한 삶 보여준 서암 스님

세상사 초연했던 맨발의 조실 스님
그 모습 떠올리며 출가자 본분 다져

원만한 대화를 위한 지침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들었다. 타인과 충돌을 피하고 좋은 분위기로 대화하려면 삼가야 할 주제가 종교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일상의 말과 행동과 생각까지도 종교를 떠나 살 수 없는 출가자들은 이 말에 의하면 애당초 원만한 대인관계를 형성 할 수 없는 부류에 속한다.

지난해는 유난히 정치에 관한 대화가 많았다. 올해도 총선이 있고, 또 종교적 신념을 정치적 이상과 결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무리들이 있어 아무래도 많은 국민들이 대화 주제를 다루는데 더욱 주의가 필요 할 것 같다. 정치와 종교에 관한 이야기 나누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피를 나눈 형제 일지라도 생각이 다르면 멀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승려이면서 정말 자신의 직위와 나이 이념 등에 초연한분이 계셨다.
한번은 문경 봉암사에 갔었다. 일주문을 얼마 지나지 않아 노스님 한분이 맨발로 풀을 뽑고 있었다. 조실채가 어디냐고 묻자 아무 말 없이 풀 뽑던 손으로 한 건물을 가르쳐 주었다. 그곳으로 가니 스님께서 조실채에 계시지 않아 기다렸다.

그런데 그곳 마루 앞 세면대야에 반듯이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순간 맨발로 일하시던 스님이 생각났다. 깜짝 놀라 일어서는데 스님께서 그저 담담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다가오고 계셨다. 바로 먼 길을 찾아서간 봉암사에 조실로 계시는 서암 스님이셨다. 순간 어찌나 당황했는지 등걸에 땀이 가득 맺히었다. 스님께서는 나의 놀라움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걸터앉아 익숙한 모습으로 발을 씻으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며 긴장을 풀어주셨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무런 가식이 없는 큰스님의 모습 앞에서 말과 행동과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는 느낌을 받았다.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직위를 희롱하지도 않는 진솔함을 잊을 수 없다.

훗날 스님께서는 조계종단의 질곡한 흐름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셨다. 그 당시 맘속에 남아있는 스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래토록 맘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아파하는 것은 마음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담고 살아가는 자신일 뿐 큰스님은 오히려 담담하게 차가운 현실 앞에서도 훈훈히 살고 계신다는 얘기를 가끔 전해 들었다.

그 뒤로 스님을 다시 뵙지 못했다. 열반하신 후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아셨는지 언젠가 상좌스님 한분이 스님의 법문을 CD에 담아 법보시 했다. 그래서 살아생전 전해 듣지 못한 감로법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 전해준 그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라즈니쉬는 성직자들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투의 글로 유명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반인들 보다 성직자들의 삶이 이중적이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범 답안 같이 말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일반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기 십상이다.

오랜 세월 수행자로 살아온 큰스님과의 스쳐 지나친 인연은 출가자로서 삶을 꾸려 가는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다루기 힘든 대화의 주제로 말하며 살아가야 하는 종교인으로서 살면서 ‘자존심이 상했다’며 타인을 원망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결국 스스로 가진 아상과의 충돌에 따른 고통이었을 뿐인 것 같다. 올해는 자신의 종교적 성향을 끊임없이 토해내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려 하기보다 구겨질 자존심마저 없는 삶을 살도록 마음 닦기에 더욱 노력하고 싶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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