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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성노예 피해 할머니와 고향의 봄을 찾아 나서다

기자명 법보신문

나눔의 집 안신권 국장

누드집 낸 연예인보다 무관심이 더 큰 상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노래한 고향의 봄. 밀크 카라멜을 평생 먹여준다기에 따라 나선 소녀는 일본군에 의해 꽃다운 나이 열여섯 순정을 철저하게 짓밟혔다. 지금은 백발이 성성해진 소녀의 빼앗긴 고향의 봄은 여태 돌아오지 못했다. 향수로 남아야할 고향은 상처와 눈물로 가슴팍에 아로 새겨진 아픔이었다. 아직 일본 정부는 소녀에게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1992년부터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며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집회는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올 2월 13일 수요집회가 800회를 맞는 가운데,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 할머니 6명도 참석의사를 밝혔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 65번지 조계종 나눔의 집을 찾아 안신권(47) 사무국장을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7년 째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과 울고 웃으며, 할머니들의 인권을 되찾고자 애쓰고 있었다.

“아직도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 문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 밖인 모양이에요. 내 문제가, 우리 문제가 아닌거죠. 그렇다고 시선을 돌리면 안 됩니다. 수치스러운 역사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인권 수난사이고, 일본군에 짓밟힌 세계 여성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인권 운동입니다. 미국 하원과 유럽의회는 이미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통과시켰지만 아직 일본은 한국에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도 안했어요. 80세를 훌쩍 넘긴 할머니들이 건강이 안 좋아지고는 현 시점에서 하루빨리 사과를 받아내야 합니다. 일본과의 외교문제 운운하며 경제우선 논리로 국민들의 인권을 지키고 회복시키는데 인색한 국가는 선진국이 아니지요. 국민을 위한 국가라고 할 수 있나요.”

꾹꾹 눌러놔도 꽉 들어찬 감정은 넘치게 마련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에는 그의 가슴에 담아둔 속사정들이 많다. 그네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들과 대면하는 일은 당사자나 가해자가 아닌 제3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만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틀린 역사의 한 단면을 한 개인들의 아픔이 꿰뚫고 지나갈 때는 역사를 바로잡고자 하는 행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의 비판은 교육에까지 이르렀다.

“7차 교육과정에 들어서면서 수능 선택과목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설명된 근현대사 과목이 추가됐는데, 학생들은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며 선택을 하지 않아요. 결국 입시문제로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할머니들 인권 문제는 3·1절 또는 8·15 광복절이나 심심치 않게(?) TV로 방영될 뿐이지요.”

거침없이 할머니 이야기를 토해내는 그가 한숨을 내쉰다. 해야 할 일은 산 넘어 산인데 주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잠자코 있지 왜 할머니들을 내세우냐’는 말이 그를 괴롭혔다. 게다가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에 무관심한 한국인의 인식에 닿았을 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모 여자 탤런트가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주제로 누드 사진집을 낸다는 소식이 들릴 때였다. 많은 이들이 고통 받는 할머니들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질타를 그녀에게 보냈다. 한 때 나눔의 집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에게 사죄했다.

그러나 그 이후 사람들은 나눔의 집을 찾아와 ‘그녀가 다녀간 곳이 이곳이냐’는 물었고, 할머니들은 뒷전이었다. 뿐만 아니다. 그 무렵 한일 피스로드 추가 참가자를 모집했으나 참여율은 저조했다. 그렇게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겪었을 땐 씁쓸함마저 들었다. 2002년부터 나눔의 집이 시작한 한일 피스로드는 한일 양국 대학생 및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모여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 문제는 물론 여성 인권에 대해 토론하는 화합과 교류의 장이다. 그는 당장 올 2월 16~22일까지 6박 7일간 열리는 ‘제12회 피스로드 2008년 Spring’ 캠프가 걱정이다.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 운동을 쉬지 않고 풀어내는 그 역시 할머니들 문제는 먼지 쌓인 책처럼 관심 밖의 일이었다. 성북어린이집 원장을 하며 도선사와 혜명복지원과 인연을 맺은 아내가 사회복지 공부를 권해 국민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일본군 성 노예 피해 할머니들이 전쟁의 어두운 기억 속에서 사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2001년 나눔의 집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접한 할머니들의 기구한 사연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강덕경 할머니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1997년 한 많은 생을 마감했어요. 유품이라곤 약병 하나, 우황청심환 한 알, 낡은 안경과 간병일지, 그리고 A5 크기의 사망진단서 한 장 뿐이지요. 모두 모아도 500g도 안됩니다. 2006년 돌아가신 박두리 할머니는 성 노예 피해 사실을 안 남편이 구타를 시작했고, 이는 자식들에게까지 대물림 됐지요. 업무에 시달리면 몰래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와 내미시던 분인데….”

이제 그는 할머니들의 여생을 위한 전문요양원 불사로 고민이다. 부지는 매입했으나 상하수도 보호지역으로 묶여 건물을 올릴 수가 없다. 올해 안에 해결하지 않으면 국비와 지방비가 지원되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현 생활관을 요양원으로 개보수하기로 했다. 그래도 요즘 그는 밤잠을 설친다. 이미 할머니들의 산역사인 생활관이 헐려 또 역사의 한 페이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건립 기금 문제 등등 걱정이 산더미다.

“법인 대표 월주 스님의 사회 활동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아요. 봉사는 나이와 상관없이 평생 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싹 텄지요. 할머니들의 인권을 회복하고, 전문요양원에서 할머니들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실 때까지 이 길을 걸을 겁니다.”

그는 할머니들의 인권과 건강을 위해 방황하고 있다. 헤매고 있는 사람은 찾고 있는 사람이며 찾는 것은 언젠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진정 빼앗긴 들에 봄은 오는가. 계란을 깨지 않고는 오믈렛을 만들지 못한다. 아픔이여 제발 안녕! 굿바이!

광주=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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