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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③

기자명 법보신문

회광반조 참뜻 전해준 B스님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얼마간 노스님(일타큰스님)을 시봉하였다. 틈만 나면 어느 스님의 도력이 가장 높은지 자주 질문하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스님께서는 그저 빙그레 웃고만 계셨다. 어느 날 오후 노스님께서 지극한 고요를 즐기시며 옛일들을 회고하고 계셨다. 이 틈을 타서 도력 높은 스님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스님께서는 지나는 말로 조용히 ‘B수좌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공부를 할려면 B수좌같이 해야 할 꺼야.’라고 하셨다.

이후 한동안 온통 B스님뿐이었다. 지족암에 선원수좌들이 오면 B스님에 관하여 여쭈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님들은 대부분 어떠한 평가도하지 않고 다만 고개만 끄떡이고 마는 것이었다. 스님들의 공부 결과를 평가하는 데에는 어떤 객관화된 시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우열을 가리는지 매우 궁금하였다. 이러한 생각이 더욱 B스님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공부를 잘하는 스님을 직접 만나보면 알아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우리 절에 스님 한분이 오셨다. 스님은 시종 차분한 표정이었다. 방을 안내하고 예를 올리고 바라보았다. 스님과 눈빛이 마주쳤을 때 너무나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스님은 형식상 나를 바라보는 게 틀림이 없는데 눈빛은 내게 닿아오지 않았다. 서로 보면서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 눈빛이 도무지 닿아오지 않았다. 너무나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스님과 눈을 마주친 이후 ‘응시’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았다. 무엇인가를 응시했던 무수한 일들과 내가 던졌던 무수한 눈길들을 되돌아봤다. 우리는 언제나 눈빛을 던져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눈길을 던져 상대를 본다고 하지만 실은 마음을 담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상대에게 마음을 던져 반사되어오는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스님은 분명 눈빛이 마주치고, 대화까지 나누웠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나를 응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 일은 내게 오래토록 무수한 의구심을 갖게 했다. 눈으로 보되 보지 않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도대체 그 스님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강원에 다닐 때 임제록(臨濟錄)을 보다가 “말을 하면 곧 스스로 회광반조 하고 다른 데서 구하지 말라.(爾言下便自回光返照, 更不別求)”라는 글귀를 보았다. 여기서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을 보았다. 그때서야 예전에 본 그 스님은 나를 바라보았지만 진정 바라본 것은 그 순간에도 자기 자신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쳐 그때 그 스님을 다시 찾아보았다.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놀랍게도 그 스님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B스님이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거처까지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찾아가 만나야 할 이유도, 용기도 없다. 오랜 시간 수행만 하셨고, 지금도 수행에 전념하시는 구도자 앞에서 뭔가를 찾겠다고 앞만 보며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할까?

회광반조는 분명 현상적인 빛의 모습을 얘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의식을 외부의 끄달림에 두지 않고 돌이켜 내면의 세계를 본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이 생생한 내게는 물리적으로 빛을 굴절시켜 다시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라 믿고 싶다. 자만스럽게 ‘응시’하는 눈빛을 돌이켜 내속에 머물고 있는 숭고한 본성을 바라보던 그날 그 스님의 눈빛을 닮고 싶다.

제주 약천사 부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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