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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간절한 기도로 큰 그릇 되라”

설 잘 쇠셨습니까? 오늘은 새 해, 새 달, 새 날입니다. 설을 쇤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가짐과 자세로 새로운 법문을 듣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문은 누가 하고 법문을 듣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을 잘 알면 새 것의 의미 또한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 모두는 ‘올해에는 반드시’로 시작되는 첫 생각, 계획들을 했을 것입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바라는 바이니, 한 가지도 같지는 않겠지요. 이러니 이것을 듣고 계신 부처님이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줘야 될 텐데 걱정입니다. 천수천안이 아니라 만수만안도 부족할 테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바람을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두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더 좋은 환경의 변화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저 앞에 솟아오른 산, 흐르는 물을 보십시오. 변함이 있습니까. 변화가 있는 것 같지만 큰 변화가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카르마파의 책에 보면 “각자 나를 보세요”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서 출발합니다. 외부의 변화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 봐야합니다.

그리고 진실로 발원해야 할 것이, 그리고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조용히 자신을 관조하면 다들 훌륭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늙은이도 아기도 아닙니다. 절대 평등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불성입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됨 알아야

우리가 매년 정월 초하루마다 기도를 하면서 “나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올해 이렇게 노력 하겠다”고 부처님 앞에 소원을 비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자신을 가만히 들여 보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없고 외부에 환경의 변화만을 바라는 기도는 허망한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도 귀로 들은 것도 다 제쳐놓고 가만히 관조해 보십시오. 누구든지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행동 할 수 있습니다. ‘근심걱정’이라는 이름조차 없는 그 상태로 들어가야 합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원인을 존중합니다. 원인이 잘못되면 결과도 좋지 못합니다.

처음 출발을 잘 해야 됩니다. 입 딱 다물고 ‘나는 오직 부처님에게 내 뜻을 전달하려고 왔다.’, ‘어떠한 누구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하는 사람은 기도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자라면 아무리 기도를 성취 했다고 떠들어도 그릇이 시원찮아서 담기지 않습니다.

자세도 낮춰야 합니다. 그것을 하심(下心)이라고 합니다. 100년 전 진주에 사는 한 노 보살님이 계셨는데 집이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점에 취직해 밥을 짓는 일을 하며 살았는데 참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줍니다. 또 손님이 남긴 밥과 반찬은 정갈하게 관리해서 주위의 가난한 이들에게 대접하니, 그 음식점과 노 보살에 대한 소문이 여기 저기 퍼졌습니다. 참 자비로운 분이지요.

예전에는 소달구지에 수확물을 싣고 자갈밭을 가다 보면 나락이 많이 떨어집니다. 노 보살은 늙은 몸을 이끌고 달밤에 그것들을 쓸어 모읍니다.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이렇게 한 달을 모으면 가마로 몇 개는 된다고 합니다. 노 보살은 그것을 또 가난해서 봄에 뿌릴 씨앗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종자 하라고 주는 일을 10년을 넘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해 동안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나중에야 밖에 나가서 음식점을 차렸는데 진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노 보살의 알뜰한 살림 솜씨와 남다른 음식 맛에 부자 된 비결이 있었겠지만, 항상 어려운 이들을 잊지 않았던 그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가 바탕이 됐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바라는 것은 태산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오욕에 찌든 번뇌 망상에 젖어 있다 보니, 법회 시간에 스님이 아무리 목탁을 치며 기도해도 뒤에서는 딴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왜 스님은 목탁을 오래 칩니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습니다.” 이렇게 불평들을 해 댑니다.

그런 분은 절에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숫자를 바라지 않습니다. 법당에 앉아 실례를 해도 좋습니다. 올해는 단단히 각오를 합시다.
공양주 보살도 오늘만큼은 공양을 조금만 준비하고 기도하십시오. 공양주가 기도를 잘해야 기도하러 온 사람들이 기도를 성취 하지요. 여러분도 주위를 정돈하고 절도 한 번 더 하고 염불도 더 하십시오.
평소보다 30분만 더 해 보십시오. 이번 일주일은 깐깐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시간이 간 줄도 모르고 노력해야지 보통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 고행을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목동의 풀을 빌려서 풀을 깔고서 내가 이 자리에서 마지막 뜻을 이루지 않으면 일어나지 말아야지 하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앉았습니다. 잠 잘 것 다 자고 먹을 것 다 먹고 하지 않습니다. 또 이번 일주일은 말이 적은 것이 좋습니다. 집에 가서도 독경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하십시오. 염불할 때 누가 와서 욕을 하더라도 아랑 곳 없이 하십시오. 내가 깨끗하면 상대방도 깨끗해집니다.

법당에 오면 망상부터 버려라

열반하신 효봉 스님은 간절하게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위에서 “며칠 밥도 안 먹더라”고 해도 자신에게는 잠깐일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든 참선이든 염불이든 시간 가는 줄 몰라야 됩니다. 반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일주일 동안 바보가 되면 스스로는 큰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든지 간에 부족함이 없는 그릇이 되어 본다는 말입니다. 어디에 내놓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대장부 기틀을 부처님 앞에서 배워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훌륭한 장부가 되라, 그리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아들, 딸 잘 키우라는 말이 아닙니다. 훌륭한 장부의 길을 가고 남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당연히 아들 딸 잘 키우고 부모도 잘 모십니다. 부모가 유언장 안 써도 자녀들이 잘 봐줍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는 훌륭한 그릇이 되어 있으니 자녀가 그 그릇에 안 담길 수 있겠습니까.

“간절히 남을 따라 찾지 말라. 점점 나하고 멀어져 간다. 지금 내가 스스로 가니 가는 곳마다 만나는구나.”
중국의 동산 스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여. 왜 자꾸 남을 의지하려 하느냐. 너의 일은 네가 스스로 해라.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미안한 말이지만 고급 장애인이 너무 많습니다. 억지로 남의 힘을 빌리려고 합니다. 집도 나라도 망하는 길입니다. 남을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서 바로 배우고 바로 실천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바로 배우고 실천한 자신의 경험이라야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장애는 욕심에서 비롯

돈도 적당하게 있어야 됩니다. 욕심이 지나쳐서 항상 돈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원효 스님도 욕심 때문에 고생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법상에서 법문한다고 하지만 욕심을 버리라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욕심 버리면 바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욕심 때문에 하게 됩니다. 욕심을 못 버렸기 때문에 갖은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이 말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오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리 됐으면 합니다. 기도도 욕심이라는 것을 다 내려놓고 해야 참다운 기도입니다. 이렇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이렇게 하겠습니다가 돼야 합니다.

일단 욕심을 버려 놓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행해야 되는가를 정해놓으면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결국 고생도 내가 사서 하는 것이지 누가 고생을 갖다 줘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욕심으로 봐서 그렇지 내려놓고 보면 내가 일등 바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큰마음 먹고 기도 한번 멋지게 해 봅시다. 간절한 생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관세음보살님이 귀 아프다고 할 정도로 호되게 불러 보는 그런 기도를 하번 해 봅시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2월 9일 부산 관음사(주지 지현)에서 봉행된 ‘무자년 정초 7일기도’의 입재법회에서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보성 스님


1928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5년 해인사에서 구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50년 해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스님은 1973년부터 1994년까지 송광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1년 대만 불광산 계단교육 참학(존증사), 호계원 재심위원을 거쳤다. 1997년 조계총림 제 5대 방장 취임한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수계산림 증사이자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이다. 현재 부산 관음사와 순천 송광사를 오가며 후학들을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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