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도일 스님의 계율칼럼]
  • 법보신문
  • 승인 2008.02.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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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임 높다고 어른 되는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불교종단은 부처님께서 만드신 승가의 형태라기보다 세속의 형식을 빌려온 불교 단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에서 불교가 넘어오면서 중국적 가치관이 섞여 있는데다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의 영향으로 세속적 가치관이 승단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비불교적인 것을 그냥 전통으로 여기며 존속하는데 있다. 세속의 전통은 세속에 있어야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교리와 조직이 전혀 다른 불교가 정치적으로 약자의 위치에서 오랜 세월 보낸 것 때문에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승단에서 엿보이는 세속의 가장 큰 그림자를 꼽으라면 관료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마을에 나이어린 사람이 장원급제하여 마을의 수장으로 부임해 왔을 때, 나이에 관계없이 직책이 높기 때문에 가장 어른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관료 뿐만 아니라 세속의 거의 모든 조직이 이와 대동소이하게 직책에 의해 상하가 구분된다.

승가에도 승려나이에 관계없이 주지나 강주가 되면 무조건 윗자리에 올라앉게 된다. 실제로 부처님께서는 이런 관료의식이 승가에 들어오는 것을 염려하시어 철저하게 승납의 순으로 자리에 앉도록 정하셨는데, 어느새 승가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을 만큼 세속적 자리계산에 물들어 있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오히려 이 제도가 타당하지 않는가하고 반문하는 하는 것이 현실이다.

관료주의와 아울러 승가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 족보주의이다. 족보주의는 세속의 족보형식을 모방한 것으로 어떤 스님이 승가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문중이 다르다고 해서 소임을 미루거나 아예 봉사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래 교단의 제도는 스승과 제자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뿐 세속적 잣대처럼 문중이나 사촌을 따지지 않았다. 스승과 제자관계도 수행하면서 서로 도와 살기위한 것으로 마련된 것이다. 현재 제도적으로 어떤 불교 종단의 행정부도 세속의 정부나 국회를 모방하지 않은 곳이 없다.

부처님 계실 때에 몇 천 명의 대중이 한 곳에 모여 살아도 별다른 행정부가 없었다. 평생을 부처님 법대로 살아온 장로들에 의해 사안이 결정되고, 문제가 생기면 갈마에 의해 해결하였다. 어차피 도를 닦을 목적으로 출가했으니 소임은 권력이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 대중의 조력자 입장에서 행해졌던 것이다. 또 스님이 나설 수 없는 자리에는 거사나 정인들이 일을 맡아서 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조직은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긴 역사를 가진 문중과 문파를 부정할 이유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존경받을만한 승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승가의 조직이나 운영의 방법이 반드시 세속적인 시스템을 빌려야 할 필요는 없다.

송광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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