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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황혼 물들이는 수행이지요”

기자명 법보신문
  • 복지
  • 입력 2008.03.03 14:59
  • 댓글 0

자원봉사 25년 홍옥근 씨
한국전쟁 때 죽음 대면

생명 중시 불교에 감화
참회로 봉사의 삶 서원
 

<사진설명> 25년 째 자원봉사를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홍옥근 씨의 웃음이 천진난만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한민족은 서로의 이념을 앞세우며 총구를 겨누었다. 39kg의 몸무게에 키 155cm도 채 안 되는 유약한 열아홉 청년은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 또래 청년들에게 총칼을 들이대야만 했다.
죽음은 언제 들이닥쳐도 이상할 것 하나 없이 서슬 퍼렇게 그의 눈앞에 마주하고 있었다. 그는 광주 상무대에서 위생병으로 군생활을 하며 총상을 입고 죽어간 전우들의숱한 죽음과 대면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장이 약해 우유도 마시지 못했던 홍옥근(77·원경) 씨의 마음은 얼어가고만 있었다. 메마른 가슴에 무언가가 필요했고,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나면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 길만이 그에겐 구원의 단비라고 믿었다.
그는 1963년 보건복지부 가족계획협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7년 정년퇴임을 앞둔 83년부터 한국청소년연맹 청소년상담실 제1기 상담봉사자로 두 번째 삶의 첫 막을 열었다.

기본 및 전문연수과정을 거쳐 상담전화가 폐쇄될 때까지 1577시간을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 그의 남을 위한 삶에 불연도 한몫했다. 군복무 시절 비가 오던 칠석날 어느 절에 올라 무작정 절을 하던 불교와의 인연은 결혼 후 안양 수리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1994년 그를 조계종 자비의 전화로 이끌었다.

“지난날을 참회하고 새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지요. 불교와의 인연은 새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어요. 주장자에 방울이 왜 달린지 아세요? 스님이 지나갈 길에 미물들이 혹시라도 밟힐까 염려해 깨운거예요. 한낱 미물이라도 생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남을 위한 삶을 서원했고 상담봉사부터 시작했어요.”

부부문제, 가족문제, 정신건강 등 청소년상담보다 깊어진 상담 내용은 그의 호기심과 열정을 자극했고, 고려대 사회교육원 노인복지전문과정 등 배움의 길로 그를 인도했다.

그렇게 그는 새롭게 시작된 인생을 마음껏 누렸다.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개관한 2001년 4월부터는 월요일 오전에 입회원을 대상으로 한 상담봉사,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인 독거노인 도우미 등등. 가슴 아픈 사연을 만난 것도 여러 번. 간암으로 투병 중인 88세 노인이 세연을 접을 때는 그렇게 서운했었다고. 언제나 문을 열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노인의 죽음은 그에게 죽음 케어에 대한 봉사에 뛰어 들게 했다. 그래서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처음으로 실시한 호스피스 교육을 수료했다. 이론 70시간 실습 60시간이라는 빡빡한 일정에도 거르지 않는 정성을 쏟았다.

“아내가 호스피스 교육이 있다며 같이 참가해 봉사하자고 먼저 제안하더군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사람은 태어나고 늙어서 병들고 고생하다 죽는 과정이지만 깊이 생각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확신을 갖고 공부했지요. 꽃은 말라 비틀어져 시들지만 열매를 맺고, 열매는 썩어 문드러지지만 씨앗을 낳고 다시 꽃을 피우지요. 죽음을 앞둔 이들의 편안한 임종을 위해 노력할거예요. 하루하루 봉사가 즐겁네요.”

법명처럼 자신과 타인의 참모습을 비추는 동그란 거울이 되고 싶은 70대 노인. 그의 황혼은 하루하루 봉사를 통해 배우는 깨달음으로 충만하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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