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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여운깊은 책읽기]아빠마저 뿔나기 전에

기자명 법보신문

『아빠는 가출 중』미츠바 쇼고 지음 / 한스미디어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한자(김혜자 분)가 마침내 1년간의 휴가를 얻었습니다. 남편은 ‘택도 없는 소리!’라며 도리질하고, 똑같은 시절을 살아온 시누이와, 엄마가 없는 가정을 상상할 수 없다는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만 뿔나라는 법이 있습니까, 어디!

아빠도 직장이고 집이고 다 팽개치고 딱 석 달 열흘 사라지고 싶을 때가 분명 있습니다. 석 달 열흘이라니, 거 무슨 ‘알렉스 화분에 물주는 소리’냐며 ‘딱 하루 만이라도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라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40대 중반의 무네유키는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과 딸 하나 그리고 치매기가 있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가장입니다. 그런 그가 직장에서 명퇴를 당하자 퇴직금의 얼마를 떼어서 잠적하고 말았습니다. 가족 누구에게도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고서…. 주말드라마에서 한자가 가족에게 당당히 휴가를 요구하고 나간 것에 비하면 소설 속의 무네유키가 가족에게 한 짓은 좀 잔인하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무네유키네 가족들은 다들 지독한 염세주의 환자였습니다. 가족들은 조금도 서로에 대하여 관심이나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냉랭하였습니다. 무네유키가 벌어오는 돈으로 그저 한 곳에 모여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가만 들여다보니 이 가족들은 끈끈한 혈연관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나마 아빠가 있었기에 가족이랍시고 지내왔는데 이제 그 구심점이 사라진 이상 그들은 더 이상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살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흩어져 버린들 뭐라 할 사람도 없습니다.

아빠의 가출 동기가 뭐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반항기 아이들 가출에 무슨 특별한 동기가 있지 않듯이 말이지요. 문제는 남은 가족들의 삶입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왔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졌을 때 가족들은 허둥대고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러다 비로소 집 나간 가족이 하나의 인간으로 느껴집니다.

이제 그 빈자리가 집을 나간 그 사람의 자리인지, 아니면 그 사람 자체가 아닌, 내 욕심의 자리였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자기들의 불행이 증발한 아버지 때문이 아님을 가족들은 조금씩 느껴갑니다. 항상 아빠, 엄마 때문에, 자식 때문에 하기 싫은 역할을 해야 했다며 불평하던 타성에서 벗어나 그들은 자발적으로 가정을 끌어나갑니다. 그리하여 하나같이 스스로 가족의 구심점이 되어 갑니다.

그러고 보면 내게 가장 크게 무시당해온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있는 배우자나, 자식, 부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정이 제일 소중하다면서도 가족을 생명도 감정도 없는 붙박이 장롱처럼 여겨왔다면,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그가 뿔나서 나가버리겠다고 하면 어쩌시렵니까!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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