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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불교 최초]12.부도

기자명 법보신문

도의선사 추정 진전사터 부도가 최초

 
(사진 위부터)도의 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터 부도. 844년 세워진 염거화상탑(사진 가운데). 가장 수려한 작품으로 꼽히는 철감선사탑.

부도(浮屠)란 스님들의 다비장을 치르고 난 후에 수습한 사리를 안치하는 묘의 일종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과 구분하기 위해 부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부도 가운데 탑의 형식을 취한 것을 부도탑이라 부르고 있다. 또 다른 석조물과 달리 대부분 부도에 따르는 탑비가 건립돼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당시의 사회·문화상까지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 부도는 단순하게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묘에 머물지 않는다.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세계를 형상화했기에 부도가 만들어진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가 하면, ‘모든 사람이 깨달음을 성취해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는 대승의 여래장 사상이 스며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부도는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경전밖에 따로 전하니 사람의 마음을 올곧게 가리켜 성품을 보고 깨달음에 이른다’는 선(禪) 불교의 원리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부도는 말과 글을 쓰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통하는 소통의 의미를 가르치기도 한다.

844년 염거화상탑이 명문상 최고

부도에 담긴 소통의 가르침은 우리나라에서 부도가 만들어지고 확산된 시기를 통해서 보다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서 부도는 9세기에 이르러 선종이 들어오고 구산선문의 9종파가 형성된 이후 각 산문의 제자들이 스승의 입적 후 보다 영구적으로 모시기 위해 석조부도를 만들면서 점차 확산됐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선종이 발달하면서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라 하여 조사나 선사의 부도가 조성되었고,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역시 신라에 선종을 소개한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터 부도(보물 제439호)다.

도의선사는 신라 선덕왕 5년(784)에 당나라에 건너가 마조의 제자 서당 지장에게 선법을 이어받고 헌덕왕 13년(821)에 돌아왔다. 그러나 당시 교종 일색이던 상황에서 선법을 널리 펴지 못하고 서라벌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진전사에 은거하며 제자들을 양성해야만 했다. 바로 그 진전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추정되는 도의선사의 부도로 알려진 진전사터 부도는 일반적 형태인 팔각원당형과 차이가 있어 기단부와 중대석이 탑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팔각형의 몸돌과 지붕돌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기단부는 전형적인 신라 삼층석탑의 모습이다. 또한 상대석의 연꽃받침과 몸돌 그리고 지붕돌을 팔각으로 구성해 부도의 초기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 부도는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의선사 부도에서 한발 더 발전한 형식이 팔각원당형이고, 가장 대표적인 부도가 전흥법사 염거화상탑(국보 제104호)이다. 이 부도는 옮길 때 발견된 ‘금동제탑지(金銅製塔誌)’에 신라 문성왕 6년(844)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현존 부도 가운데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거의 완전한 팔각원당형이어서 신라 하대 팔각원당형 부도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다.

문헌상 최초는 원광법사 부도

염거화상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며 선을 전파하는데 힘썼고 제자인 보조선사 체징에게 선법을 물려주었다. 부도의 기단부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새김은 균형감을 갖춘 단순함과 소박함을 지녔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한 기품과 깨끗한 조각 솜씨가 잘 어울리는 부도다.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갖는다.

균형미를 갖춘 이 부도는 강원도 원주 흥법사터에 있었으나, 이에 대한 근거가 확실한 것이 없어 부도탑 이름 앞에 ‘∼이라 전한다’는 뜻의 전(傳)자를 붙였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있는 것을 서울 탑골공원으로 옮겼다가 경복궁에 세웠으나,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하면서 현재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도의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터 부도와 염거화상 부도에 이어 쌍봉사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보물 제157호), 실상사 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 등이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대표적 부도다.

부도는 이처럼 통일신라시대 후대에 구산선문이 성립되면서 조성되고 확산되었으나, 문헌상으로 볼 때는 이보다 오래 전에 부도가 존재했었던 기록이 나타난다.

문헌상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부도는 원광법사의 부도로 『삼국유사 권4』에 따르면 627년부터 649년 사이에 조성됐다. 『삼국유사』에서는 “원효가 입적한 후 설총이 유해를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했다”는 기록과 “이승의 사후 소상을 만들어 민장사에 안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의 해현(573∼630)은 “입적 후 시신을 석실에 안치했으나 호랑이가 시신을 먹어 머리와 혀만을 남겨 놓았는데 3년이 지나 혀가 굳어 돌과 같이 되어 그 혀를 석탑 속에 간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진전사터 부도 이전에도 형식을 달리한 부도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나, 남아 있는 것이 없어 그 형식 등을 알 길이 없다.

현존 부도 중에서 곧 날아갈 듯한 비천상과 가릉빈가의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진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이 가장 수려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철감선사는 신라 원성왕 4년 황해도 봉산 출생으로 전북 금산사 근처에 있는 귀신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헌덕왕 17년(825)에 입당해 남전보원에게 법을 받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했다. 풍악산에 잠시 머물렀으나 곧 쌍봉사로 옮겨와 선풍을 크게 일으켰고,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하자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부도탑의 이름을 징소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 부도는 정교하면서도 동적인 변화가 서로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극락세계를 현실 속에서 재구성해 당시 사람들의 극락세계에 대한 생각을 나타내주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통일신라시대 팔각원당형 양식의 부도는 조선 초기까지 이어지고, 현재 가장 많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종 모양의 석종형 부도는 고려말부터 조선조 전시대에 걸쳐 유행했다.

태화사지 12지상부도(보물 제441호)가 국내 최초의 석종형 부도로 꼽힌다. 또 이 부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12지신을 새긴 석종형 석탑으로 감실 정면에 말을 시작으로 12지상을 새겨놓았다. 12지상은 손을 구부리거나 합장을 하고 있으며,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태화사지 12지상이 첫 석종형 부도

부도는 시대에 따라 조각을 달리하며 외적 화려함도 변해왔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조성된 부도에는 운룡 무늬가 새겨진 것들이 많고 사천왕, 가릉빈가, 연화비천상 등의 유려한 조각들이 화려함을 더해 외형 발전의 절정에 이른다. 고려시대 부도로는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국보 제101호)과 정토사 홍법국사실상탑(국보 제102호)이 유명하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교가 쇠퇴하면서 화려함이 사라지고, 조성하기 쉬운 석종형 부도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조선시대 부도로는 청룡사 보각국사정혜원융탑(국보 제197호), 회암사지부도(보물 제388호), 연곡사 서부도(보물 제154호) 등이 대표적이다. 현존 부도 중 가장 특이한 부도로는 충북 영동의 영국사에서 발굴된 소조부도로 우리나라에서 최초이자 단 하나뿐이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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