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말을 잊어 버렸던 지엄 스님
[성원 스님의 기억으로 남은 스님]말을 잊어 버렸던 지엄 스님
  • 법보신문
  • 승인 2008.09.09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 묵언 수행으로 말하는 법 잊었던 스님
티 없이 맑은 마음 간직한 모습 부러워

 

가을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더없이 하늘이 높아져 더없이 넓어진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 이 가을 무엇으로 채워나갈까? 삶속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단어는 언제나 행복이다. 부처님에 관해 말 할 때도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던 분이라고 규정하고 싶다. 부처님을 믿고 의지해 따르는 사람들은 높아진 가을 하늘 가득 부처님처럼 행복으로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 단순함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껴지게 하곤 한다. 일상도 마찬가지로 의식의 단순함을 지닌 사람들을 가까이 하다보면 티 없는 가을 하늘같이 청아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처음 지엄 스님을 만났을 때 느낌이 그랬다.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말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스님의 의식이 투명하고 단아해서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항상 한발 물러서있는 듯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던지는 결론적 어투도 너무나 간단해서 우리들의 긴 이야기가 괜한 시간의 낭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곤 했다.
한번은 스님이 산에 머물며 오랜 시간 묵언하며 정진했다. 문제는 묵언을 풀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 때 적응이 문제였다. 스님이 전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들은 정말 그럴까 의아하기만 했다.

묵언을 풀고 은행에 갔는데 창구의 직원이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 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현금으로 드릴까요, 수표로 드릴까요?”라고 하는 간단한 질문에도 바로 답을 하지 못해서 쩔쩔매다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한참 후에 다시 창구로 가서 “현금”이라고 말하면 창구 직원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해 서로 어리둥절해 했다고 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사고마저 멈춰버려서 한동안 사회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생각을 풍부하게 하기위해 독서를 하고, 사고를 민첩하게 하기 위해 대화를 한다는 옛말이 다시 떠오르게 했다. 너무나 단순해 어느 순간에인가 생각이 멈춰버린 스님을 대하면서 복잡하다 못해 스스로 지쳐가는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이제는 스님도 많은 시간이 흘러 사고도 민첩하시다. 하지만 그때의 깊은 삼매의 힘이 있어서 인지 지금도 12시간동안 계속 정근기도를 하기도 하시니 우리들은 부러워할 뿐이다.

또 지엄 스님은 산중에서 오래 살아서인지 쉽게 산삼을 캐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산삼으로 금전적인 이익을 챙기지 않고 수행하는 스님들과 도움이 필요한 불자들을 위해 사용하곤 한다.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귀한 산삼을 쉽게 주기도 하지만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주지 않으려 했고, 지나친 욕심으로 자신만을 챙기는 사람들을 대하면 오래토록 마음 아파하고는 했다.

특히 스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토록 치열한 구도의 삶을 사셨음에도 우리들과의 만남에서는 늘 유쾌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깊은 정진의 시간을 지닌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지나친 진지함으로 인해 만나는 사람들이 심적 부담감을 겪곤 하는데 스님은 수행으로 가벼워진 자신의 의식처럼 일상도 경쾌하고 아름답게 엮어가고 계신다.

언제든 만날 때마다 자신의 수행담을 진솔하게 얘기해주는데 듣다보면 마치 아득한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결실의 계절 가을, 풍요로운 현실 속의 결과물에 젖어 꿈을 잃어버리기 쉬울 때다. 이번 가을에는 꼭 지엄 수좌를 만나 달콤한 결실에서 벗어나 높은 하늘만큼 높은 이상을 꿈꾸어 보고 싶다.

성원 스님 제주 약천사 부주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