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청심]해인삼매
[세심청심]해인삼매
  • 법보신문
  • 승인 2008.09.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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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이 떠난 적막한 도량에는 벌써 어둠이 내리고 온통 소리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다. 온갖 풀벌레 소리와 파도소리가 겹치고 있지만 반딧불이는 마치 지휘자처럼 이리저리 날며 소리 없는 소리로 묘음을 연출해 내고 있다. 잠시 펼쳐 놓았던 어록을 덮어놓고 삼매에 들어본다. 어느덧 일체 소리의 흔적이 끊어지고 나니 동산의 능선에는 달이 솟구쳐 오른다. 관음상 뒤 억새밭에는 수 없는 손들이 솟아올라 달빛을 맞이하고 있다.
“누구네 집엔들 밝은 달, 맑은 바람 없으리(誰家無明月淸風).” 『벽암록』

달은 점점 중천으로 떠오르다가 마치 큰 파도를 타는 듯이 구름을 넘어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천진면목을 훤칠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선실에도 하나의 달이 들어오고 나무마다 차별 없이 걸려 있다. 달은 잘나거나 못난 사람 아무리 가난하고 부자라고 해도 평등하게 비쳐준다. 또한 큰 죄를 짓거나 학문이나 지위가 없어도 누구나 둥근달 하나씩 품고 있다. 다만 사량 분별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만 없으면 사람마다 차별 없이 가지고 있는 불성은 청풍명월과도 같아서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찾아오는 것은 순수하고 티 없이 맑은 본래 성품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만일 사람으로 태어나서 성품을 밝히지 못하면 밖에서 얻은 것은 아무리 귀한 보배일지라도 때가 되면 없어지고 말아 고향을 등지고 객지에서 헤매는 나그네 신세와 같아서 찬바람이 불면 더욱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어디에 둘지를 모를 것이다.
임제스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지·수·화·풍 사대는 법을 설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허공도 또한 그러한데 다만 그대 눈앞에 홀로 밝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것만이 비로소 법을 설하고 들을 줄 안다고 했다.” 여기서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우리의 본래 마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 나선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 하시기를 “내가 그대에게 일러주고 싶지만 그대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믿음을 성취하고 나면 오직 ‘이것’ 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어쩔 수 없어서 ‘이것’이라고 이름 해도 고운 피부에 상처를 낸 것과 같고 아무리 좋은 금가루라 해도 눈에는 오히려 허공꽃을 일으키니 일체 이름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타날 때는 여섯 가지 문으로 나타나서 묘용이 자재하니 걸음걸음 달이 뜨고 맑은 바람이 일어난다.

한 줄기 불어오는 청풍에 귀를 씻고 갈대밭에 떨어지는 달빛에 한 생각을 쉬고 나면 일시에 주객이 끊어지고 맑은 바람 둥근 달이 한집안 소식임을(淸風明月共一家) 체험할 것이다. 인간이 참으로 아름답고 귀하게 보일 때는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이다. 이것은 불성이 온전히 발현한 농익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한 그루의 나무나 돌에도 두 손 모아 정성을 들였던 것은 여기에서 불성의 참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밝은 달과 맑은 바람 뿐만 아니라 일체 생명은 불성의 나툼이어서 본래 둘이 아니다.

요즈음 세상이 많이 어렵다고 한다. 서로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훈훈한 미소를 건네 보자. 가진 것이 없어 줄 것이 없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한 보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덧 처하는 곳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모두가 한 가족임을 깨달아 행복이 찾아 올 것이다.
어느덧 달은 바다에 떨어져 해인삼매에 들었다.

일선 스님 거금도 금천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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