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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신사리 보관한 그릇이 ‘사리기’

기자명 법보신문

사리기-사리장엄구란

사리(舍利)에 대한 기록이나 자료에는 대부분 사리기(舍利器)나 사리장엄구(舍利藏嚴具) 등의 표현이 함께 등장한다.

여기서 사리기는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담는 그릇을 말하고, 사리기를 비롯해 각종 공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사리장엄구라고 한다. 사리기는 일반적으로 금, 은, 동, 철, 나무, 돌 등 여러 재료로 만든다. 그리고 사리를 정성껏 봉안했기 때문에 밖(외함)에서 안(내함)으로 갈수록 귀한 재질을 이용했고 3중 또는 4중, 많게는 7중으로 여러 겹의 사리기를 이용해 사리를 봉안했다.

이렇게 사리기에 봉안한 사리는 탑을 세워 탑 안에 안치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리기는 탑의 어느 부분에 안치했을까. 인도에서는 내부까지 이어진 찰주 아래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했고, 중국에서는 목탑의 경우 심주(心柱) 아래에 봉안했다. 이때 지표면 아래로 3m 정도 깊이에 거대한 심초석을 두고 그 위에 심주를 세우기 때문에 모두 탑의 지하에 봉안하게 되는 지하식이었다.

우리나라는 목탑, 석탑, 전탑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목탑은 심주 바로 밑에 석함(石函)을 두고 그 아래에 사리를 안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석탑은 사리 봉안 장소에 일정 규칙이 없을 정도로 여러 군데에서 사리함이 발견되고 있다. 다만 시대에 따라 3층 탑신에서 2층 지붕돌과 탑신돌을 거쳐 1층 탑신으로 사리봉안 위치가 변해왔다. 예외적으로 김천 갈항사지 삼층석탑과 울산 청송사지 삼층석탑은 기단에 사리를 안치했고,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은 기단과 탑신부에 사리를 나누어 안치하기도 했다.

목탑과 석탑은 모두 돌 자체에 4각 혹은 원형의 사리공을 파고 그 내부에 사리를 봉안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전탑은 대부분 별도의 석함을 제작해 그 안에 사리와 공양물을 넣은 후 다시 함을 벽돌로 된 4각의 공간 안에 넣었다. 학자들은 이러한 방식을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할 때 돌-동-은-금-수정의 순서대로 넣어 봉안했던 전통양식을 따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리장엄에 관한 첫 기록은 1995년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창왕명 석조 사리감에 새겨진 ‘백제 위덕왕 14년(567)에 사리를 공양했다’는 명문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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